“내가 아는 박진영 맞아?”
‘크리스마스 캐럴’을 시사한 영화 관계자들이 입 모아 한 말이다. 무대 위 화려한 아이돌 진영,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속 한없이 스위트한 유바비. 박진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사포같이 거친 모습만 남았다. 온전히 캐릭터에 녹아들 줄 아는 배우가 된 것이다.
박진영의 첫 상업영화 주연작인 ‘크리스마스 캐럴’(감독 김성수)은 크리스마스 아침 죽은 채 발견된 쌍둥이 동생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형 일우(박진영)가 소년원 패거리와 잔혹한 대결을 펼치는 액션 스릴러다. 박진영은 1인 2역을 맡아 독기에 가득 찬 일우와 발달 장애를 가진 순수한 영혼 월우를 넘나들었다.
작품은 날 것 그대로의 액션과 적나라한 표현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원작인 주원규 작가의 동명의 장편소설은 더 수위가 셌다. 원작을 먼저 접했던 박진영은 영화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부터 했다. 이후에 좀 더 정제된 시나리오를 보니 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 보여줬던 그의 이미지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시나리오 나온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폭력적인 게 많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몸 사리다가 애매하게 할 바에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정확하게 보여주려고 했고 안 다치면서 하려고 했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마음 한 편에는 ‘언젠가 나도 저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또 지금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일우의 모습을 발견해 준 김성수 감독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전혀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에는 김 감독의 배려가 있었다. 일우와 월우의 촬영 순서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줘 왔다갔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캐릭터 분석과 감정 몰입만 잘 하면 될 문제였다.
“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게 중요하잖아요. 일우와 월우가 생각하는 방식을 고민했어요. 결론적으로 상황은 다르지만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했고요. 일우는 집을 나간 부모님을 욕하면서도 보고 싶을 거고, 월우는 부모님과 지낸 크리스마스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니까 기다리는 거잖아요. 방식이 다를 뿐이지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일우는 박진영에게 없는 모습이다. 세상에 원망이 가득하니 욕도 쉽게 내뱉는다. 화가 가득해 쉽게 흥분하고 주먹이 먼저 나간다. 반 나체로 잃을 것 없는 것처럼 뛰어들어 피범벅이 되기도 한다.
“주근깨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매 메이크업도 하고, 머리도 반삭을 하면서 외형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욕 연기는 초반에 어색해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도 남자들끼리 있거나 갓세븐 멤버들이랑 있을 때 욕을 하지만, 일우는 처음부터 욕을 하진 않았을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똑같은 욕만 했어요. 상황적인 면도 어색함으로 드러나길 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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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월우는 아프거나 힘들어도 웃는 캐릭터다. 그는 발달 장애가 있지만 일우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감독님이 발달 장애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기자로 일하는 발달 장애인들이 있는데, 다섯 분을 만났어요. 연기하는데 그분들을 참고하진 않고 상상을 하면서 했고요. 그동안 선배 배우들의 연기를 봤으니 그런 게 제 몸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요. 따라 하진 않았지만 본 게 있어서 유사성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월우는 항상 웃고 있어야 하고 이상하게 슬퍼 보이는 캐릭터라,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월우가 동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쉽지 않았다. 원작에서도 꼭 있어야 하는 포인트였지만 ‘꼭 있어야 할까. 이렇게 월우를 괴롭혀야 할까’라고 할 정도로 힘든 장면이었다. 월우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해야 되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불편하다기 보다 월우를 괴롭힌다는 생각이었죠. 너무 조심스럽고 중요한 신이니까 모든 스태프가 숨죽이면서 지켜봐 줬어요. 우리를 아이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대해줬어요. 카메라를 옮길 때도 우리에게 방해가 안 되게 배려해 줘서 고마웠어요. 너무 추운 날이었는데 NG도 아예 없었죠.”
본인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마주했을 때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큰 스크린에 가득 찬 얼굴을 보고 있으니 10분 정도는 긴장했고, 이후부터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조금만 더 힘을 뺏더라면 더 입체적이지 않았을지, 관객들에게 덜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지 많은 생각이 오갔다.
“솔직히 검색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조금 해봤어요. 팬들이 적은 건지 모르지만 좋았다는 평을 보고 편하게 누웠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다를 수도 있으니 부끄럽더라고요. 좋은 글만 봤어요.”(웃음)
“작품이 손해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도움이 됐으면 해요. 같이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니 피해 없이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 ‘크리스마스 캐럴’을 추천하고 싶어요. ‘크리스마스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난 싫어’라고 하는 분에게요. 마치 십센치의 ‘봄이 좋냐??’ 같은 거죠. 여러 가지를 느끼고 갈 수 있는 영화예요.”
올해 목표가 일을 많이 하는 것이었다는 박진영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끝으로 목표를 이뤘다. ‘유미의 세포들’부터 넷플릭스 영화 ‘야차’, 갓세븐 앨범까지 한 해를 꽉 채웠다. 내년에는 군 입대도 앞두고 있고 솔로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강풀 작가의 웹툰 ‘마녀’를 원작으로 하는 디즈니+ 드라마와 영화 ‘하이파이브’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20대이다 보니까 일을 열심히 해서 잘 기록해두고 가야겠다 싶었어요. 20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는 안 해요. 중간중간 방황했을 때도 있고 힘들었을 때도 있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조금 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얽매여 있었거든요.”
“인상이 선한 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곤 해서 제 얼굴의 한계를 느꼈어요. 그건 아마 제가 경험을 쌓다 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군대에 갔다 오면 악이 생기지 않을까요? 욕심이 있어서 앞으로 뭐든 다 해보고 싶어요. 제가 지금 할 수 있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교복 한 번 입어보고 싶어요. 관객들이 허락만 해준다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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