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세자금대출금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임차인에게 바로 반환되는 점을 악용한 신종 범죄가 등장했다. 해당 범죄 일당들은 주로 20대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고액 알바’라고 속이며 대출 사기를 저지르도록 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일대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악용한 신종 사기 행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범죄 일당은 고액 알바라며 전세 계약을 체결할 임차인을 모집해 전세 계약을 맺게 한다. 보증금의 5~10%에 달하는 계약금도 납부하고 은행으로부터 수천 만~1억 원 상당의 전세자금대출도 받도록 한다. 그러다가 잔금 당일 해지 의사를 밝히며 기존에 납입한 계약금을 포기할 테니 전세자금대출로 처리된 잔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도록 시킨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자금대출금을 돌려주면 임차인은 이를 은행에 반환하는 대신 일종의 수수료를 받고 범죄 일당에 넘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알바에 동원된 임차인이 대출 사기를 저지른 셈이지만 이들 역시 범죄 조직에 속은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사한 사건의 매물을 중개했던 한 공인중개사는 “임차인이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었는데 누군가가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전세 계약을 맺는 것에서부터 전세자금대출, 계약 해지 등 전 과정을 코치하고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전세자금대출을 나눠 갖자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중개사는 “전세자금대출은 본인이 받은 것이기 때문에 갚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허위로 조작하는 식으로 불법 대출을 받게 하는 ‘작업 대출’과 고액 알바를 미끼로 피해자의 명의를 이용하는 ‘명의 도용’, 여기에 ‘전세 사기’까지 결합된 신종 사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임차인은 사기에 가담한 공범인 만큼 처벌도 받을 수 있다. 부동산 전문의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전세 자금 용도의 대출이 아님에도 고의적으로 은행을 기망해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반환까지 하지 않은 만큼 은행이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 일당은 질권설정을 하지 않는 전세자금대출을 타깃으로 삼았다.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전세자금대출은 대출금 2억 원 미만일 경우 임대인이 은행에 전세금을 반환하도록 하는 질권설정과 채권 양도 등의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임대인은 대출금을 은행이 아닌 임차인에게 반환하는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이 틈을 노린 것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젊은 임차인들은 간편하다는 이유로 주로 인터넷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하는데 인터넷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상품은 질권설정을 하지 않아도 돼 이 같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중개거래마저도 대출사기에 악용되는 일이 발생하자 공인중개사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같은 사기는 사실상 중개단계에서 막을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새로운 전세 사기 수법이 연일 등장하면서 중개사들 사이에서는 비상이 걸렸다”며 “공인중개사들끼리 신종 사기수법을 서로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 이 같은 사기를 방지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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