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RM보다 인간 김남준의 색깔이 짙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깊은 소회와 다짐이 다 담겼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 그의 이야기에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공감하게 된다. 사진을 찍듯 남겨진 그의 현재 모습이 오래도록 회자될 듯하다.
RM은 2일 첫 공식 솔로 앨범 ‘인디고(Indigo)’를 발표했다. 그는 음악을 시작한 15년 동안 이 작업물을 위해 달려온 것 같다며 큰 의미를 뒀다. 그만큼 지금 자신의 모습을 가장 근접하게 그려낸 노래들로 채워졌다는 뜻이다.
그는 자연스러운 김남준의 모습에 집중했다. 앨범명 ‘인디고’는 자연에서 온 청바지 색깔이다. RM에 따르면 트랙리스트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남색, 블루가 그러데이션 된 것 같은 유기성 있는 곡들로 채워졌다.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는 앨범 재킷에는 데님 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와, 고(故) 윤형근 화백의 작품 ‘청색’이 한 프레임 안에 담겨 일맥상통한다.
솔직한 이야기를 다룬 앨범에는 김남준의 이상향과 멀어지는 RM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타이틀곡 ‘들꽃놀이’는 가장 대표적인 그의 이야기. 강렬한 힙합을 기대했다면 놀랄 수도 있다. ‘화려하지만 금세 사라져 버리는 불꽃이 아닌 잔잔한 들꽃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담담한 고백이 잔잔한 랩으로 전해진다.
이외 수록곡도 RM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는 본래 뜻인 ‘정물(靜物)’과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해, 틀에 갇혀있지 않고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어곡인 ‘체인지 파트2(Change pt2)’는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변하고 달라지는 것에 대해 냉소적으로 말하는 가사가 특징이다. ‘넘버2(No2)’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을 주제로, 어떤 걸 겪든 그것이 최선이었으니 돌아보지말자는 RM의 다짐이 담겼다.
RM이 다양한 곳에서 영감받고 성장하는 단계를 거치는 아티스트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첫 트랙을 여는 ‘윤(Yun)’에서 고 윤형근 화백의 내레이션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곡은 RM이 윤 화백의 작품과 메시지를 통해 느낀 것을 담담하게 풀어낸 노래다. 윤 화백이 생전 자주 전했던 “그림보다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낮게 깔린다. RM은 이를 통해 음악도 곧 사람이 하는 것이니, 어떤 생각과 사유, 의지를 가진 사람한테 나온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그는 솔로 앨범에서 일부러 혼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타이틀곡에서 밴드 체리필터 조유진의 파워풀한 보컬을 빌리는가 하면, ‘스틸 라이프’에서 앤더스 팩의 펑키한 보컬을 더하고, ‘올 데이(All Day)’ 가사 함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타블로와 정서를 공유했다. 혼자서 완성하기 보다 누군가의 고유한 주파수와 서사가 더해지면 완성도가 생긴다는 그의 신조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도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었다고.
음악 방송이 아닌 라이브 영상으로 무대를 선보이는 것도 RM의 색깔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곡 분위기와 메시지 전달을 배가하기 위한 선택이다. 최근 많은 가수들이 선보이고 있는 방식이긴 하지만, 전시 같은 앨범을 원했던 RM의 의도와 딱 맞아떨어진다. 9일 공개된 라이브 영상은 미국 뉴욕주 비컨에 위치한 미술관 디아 비컨(Dia Beacon)에서 촬영된 것으로, 그는 ‘들꽃놀이’와 ‘스틸 라이프’ ‘체인지 파트2’ ‘넘버2’ 라이브를 소화했다. 이 영상은 클로즈업을 하는 등 가수의 비주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실루엣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RM 본인이 사랑하는 미술과 음악이 융합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신선한 시도다.
소극장 공연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이름난 미국 초대형 스타디움 무대에 섰던 그의 행보와 사뭇 다르다. 그는 지난 5일 홍대 롤링홀에서 200명 규모의 공연을 진행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나눴다.
“전 앨범이 나오는 순간부터 제 앨범을 더 이상 듣지 않아요. 나오는 순간부터 청자의 몫이죠. 제가 느낀 것을 각자의 해석과 여백으로 곡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어요. 이 곡으로 엄청난 메시지를 전했으면 한다는 것보다 한 곡쯤은 당신의 취향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은행나무 잎처럼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들이 되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이 있어요.”(RM의 ‘인디고’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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