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권 기조에 역행한다’는 국내·외 비판을 무릅쓰고도 증산 ‘담판’을 위해 취임 후 처음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은 그를 맞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가볍게 ‘주먹 인사’를 나눈 뒤 곧장 회담장으로 들어섰다. 별도의 환영 행사도 없었다. 바로 다음 달인 8월, 사우디가 주축이 된 산유국 협의체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9월 증산량을 종전 하루 64만8000배럴에서 10만배럴로 오히려 증산 폭을 줄였다. 당시 CNN은 “빈 살만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뺨을 때렸다”는 비평을 내놓았다.
불과 5개월 뒤인 지난 7일, 2016년 이후 6년 만에 사우디를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우디 측의 극진한 환대가 이어졌다. 이날 시 주석을 태운 전용기가 사우디 영공에 들어서자 사우디 공군 전투기 4대가 에스코트를 했다. 다음 날인 8일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러 왕궁으로 향하는 시 주석 승용차는 양국 국기를 든 사우디 왕실 기마 근위대가 호위했다. 사우디 측이 시 주석을 위해 파격적인 의전을 이어간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였던 냉담한 태도와 확연히 대비되는 최고 수준의 화려한 환영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美 보란 듯 “화웨이, 사우디서 사업하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이 약속한 경제 협력도 파격의 연속이었다. 중국과 사우디 기업들은 시 주석 방문 기간 녹색에너지와 녹색수소, 태양광에너지, 정보기술(IT), 클라우드 서비스, 운송, 물류, 의료산업, 주택 및 건설 공장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34개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 간 투자 협정 금액은 적어도 292억 6000만 달러(약 38조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는 대규모 국책 사업인 ‘비전 2030’에 중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시 주석은 “중국은 사우디와 에너지 정책 관련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원유 무역 규모를 확대하며 탐사 및 개발 협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양국 경제 협력에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사우디에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 데이터 센터 등 첨단 기술산업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된 점이다. 화웨이는 미국의 중국 제재에 상징으로 꼽히는 기업으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20년부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화웨이를 미국 시장에서 퇴출했다. 이후 서방 국가들도 순차적으로 화웨이와 거리 두기에 나섰다. 사우디가 그런 화웨이에 미국 보란 듯 손을 내민 것이다.
바이든 ‘보복 카드’ 주목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시 주석이 이번 방문을 통해 중동 영향력 확장에 나섰다는 점이다.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를 등에 업은 시 주석은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 압델 파타 부르한 수단 군부 지도자, 미샬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쿠웨이트 왕세자 등 주변 중동국들과의 관계도 다졌다. 지난해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중동에서 발생한 공백을 중국이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사우디의 ‘밀착’을 바라보는 바이든 정부의 속내가 편할 리는 없다. 미국 정치권은 지난 10월 이미 사우디에서 미군과 미사일방어체계(MD)를 철수해 미국의 뒤통수를 친 사우디를 응징해야 한다고 들끓은 바 있다. 사우디가 아직 군사 측면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에 미국과 사우디 간 깊어진 골은 오히려 중동에 군사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이 과거 중동 질서를 좌우했던 미국의 역할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동 진출이 결국 석유를 둘러싼 ‘에너지 역학’ 때문이었음을 고려하면 중국도 중동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하려 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중국은 이미 사우디에서 우라늄 채굴과 탄도미사일·군용 드론 생산에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 AFP 통신은 “중국과 사우디의 군사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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