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0일 올해 반클라이번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기념으로 진행한 리사이틀에서 자신만의 곡 해석과 온 몸을 불사르는 듯 한 몰입도 높은 연주를 선사했다. 관객 2000여명은 2시간 남짓의 공연 내내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연주에 몰입했고, 흐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극도로 집중하며 그의 음악세계에 접속했다.
임윤찬은 이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콩쿠르 우승 후 처음으로 국내 리사이틀을 열었다. 콩쿠르 우승 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거나 단체 공연에 게스트로 나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소화했지만 자신의 음악세계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리사이틀은 처음이라 관심을 끌었다. 그는 1부에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를 시작으로 바흐의 ‘신포니아’ 모음곡 15곡을, 2부에는 리스트 ‘두 개의 전설’, ‘단테 소나타’를 차례로 연주했다. 콩쿠르 당시 연주한 곡 대신 평소 그가 좋아했던 곡들을 선보였는데, 임윤찬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콩쿠르 곡을 해 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더 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정히 정리한 헤어스타일, 흰 셔츠에 연미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공연 시작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한 뒤 바로 건반에 손을 얹고 기번스의 곡을 연주했다. 이어서 연주한 ‘신포니아’에서 임윤찬은 인간의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건반으로 옮겨냈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곡을 연주할 때가 되면 잠시 쉬어가면서 심호흡을 하곤 했는데, 생각이 많아진 듯 곡이 진행될수록 심호흡은 깊어지고 쉼이 조금씩 길어졌다. 1부의 곡들은 바흐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향한 존경이 담긴 선곡이었다. 기번스는 굴드가 좋아했던 작곡가였고, 임윤찬은 ‘신포니아’를 굴드가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연주했던 버전으로 순서를 바꿔 연주했다.
2부 무대는 그가 좋아하는 리스트의 곡들로 채웠다. ‘두 개의 전설’은 성 프란체스코의 일대기를 음악으로 그린 곡으로, 곡 초반 새의 날갯짓을 소리로 표현하는 오른손의 고음부 트레몰로 연주부터 귀를 잡아끌었다. 임윤찬이 드라마틱한 전개의 곡을 연주하며 발을 구르고 고개를 흔들자 머리카락도 흩날렸다. 온 몸의 에너지를 다해 연주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웅장하고 강렬하면서도 정확한 타건이 주는 몰입감에 관객들은 곡이 끝나고 박수 치는 일도 잊을 정도였다. 바로 이어진 ‘단테 소나타’의 연주는 매우 압도적 몰입을 보여줬다. 임윤찬은 과거 이 곡을 연주할 당시 단테의 ‘신곡’을 외다시피 반복해 읽으며 준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천국과 연옥, 지옥을 오가는 ‘신곡’의 구성처럼 휘몰아치다가도 쉼표 구간을 길게 가져가며 잔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등 감정의 낙차 큰 연주를 들려줬다.
곡이 끝나자마자, 공연 내내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함께 했던 관객들의 침묵이 깨지면서 환호,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 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아이돌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환호성에 쑥스러워하던 임윤찬은 바흐 ‘시칠리아노’와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앙코르 곡으로 연주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공연은 콩쿠르 우승 뒤 높아진 인기를 반영하듯 예매 시작 1분도 지나지 않아 매진됐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티켓 판매 부스 앞에서 줄 서서 혹시 있을지 모를 취소표의 발생을 기다리기도 하고, ‘표를 구합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공연장 로비를 서성이기도 했다. 관람객 가운데는 그가 참여한 신보 ‘베토벤, 윤이상, 바버’의 한정판과 MD상품을 구매하려고 공연 4시간여 전부터 공연장을 찾는 이도 있었다고 예술의전당 측은 전했다. 임윤찬은 내년 1월 18일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공연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투어를 나서며 해외 활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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