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는커녕 내년도 예산안 심사마저도 매듭짓지 못한 국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더욱 격랑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야권은 탄핵소추안 카드까지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여야가 해임안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론전에 돌입하면서 연말 국회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는 11일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 상정을 위한 본회의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은 본회의에 앞서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원내 절대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또다시 거대 의석의 힘자랑을 하면서 소통과 협치도 없이 해임건의안을 의결하려고 한다”며 “정부 발목 잡기를 넘어서 발목 꺾기를 하는 것은 국민들과 스스로 멀어지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은 “이 장관은 재난 및 안전 관리의 총책임자로서 사전 안전관리 대책을 면밀하게 수립하고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법률을 위반했다”면서 “참사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언행을 지속해 주무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고 유족과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해임건의안 제출 배경을 설명했다.
우선 민주당은 원내 1당의 의석수를 바탕으로 참사 44일 만에 이 장관 해임건의안은 통과시켰지만 다음 단계에 대한 셈법은 복잡해졌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염두에 두고 탄핵안 가능성까지 내비쳤지만 탄핵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다뤄야 하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기각된다면 이 장관의 유임 명분만 만들어주는 셈이 된다.
이에 우선 특위 활동 종료 기한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국정조사를 살펴보며 탄핵안 시기를 조율할 방침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여당 국조특위 위원들이 전원 사퇴의 뜻을 밝힌 상황에서 야당 단독으로 진행하며 탄핵안 추진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先) 예산 후(後) 해임’ 기조를 유지하던 김진표 국회의장의 입장 선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김 의장은 8일 10·29 참사 유족의 극단적 선택 시도에 해임안 처리를 뒤로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도 유가족들이 협의회까지 만든 상황에서 국회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설득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예산안 처리 시한을 15일로 미루면서도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강행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장관 해임안 정국의 프레임을 일찌감치 ‘대선 불복’과 ‘이재명 방탄’으로 잡아놓은 상태다. ‘선(先) 진상 규명 후(後) 책임자 처벌’을 주장해온 국민의힘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데다 국정조사는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가리기 위한 정무적인 판단이 깔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론전을 통해 거야(巨野)를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의석수로는 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정기국회가 끝나자마자 하루의 여유도 두지 않고 임시국회를 여는 이유는 국회의원은 회기 중 체포되지 않으니 이 대표의 체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 대표의 성동격서 전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수십 년 만에 일요일 본회의를 열려면 특별한 결의가 필요한데 이렇게 화들짝 해임건의안을 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다 아실 것”이라며 “그 속내는 대선 불복이고 윤석열 정권이 잘되는 것을 못 보겠다는 심보”라고 지적했다.
다만 여야가 내년도 경제와 민생의 마중물 역할을 할 예산안 통과에는 손 놓은 채 주도권 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시선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여기에 검찰의 이 대표 수사마저 본격화된다면 정국의 급랭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정작 이를 풀기 위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여야는 물론 대통령마저도 정국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결 정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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