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아르헨티나의 고위 경제 관료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마르틴 구스만 경제장관은 트위터에 사직서를 올리면서 “다음에 누가 오더라도 내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대통령에게 간언했다. 정가에서는 구스만 장관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통령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던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재정 긴축과 부채 축소를 주장했던 구스만 장관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그의 경질을 공개적으로 요구해왔다.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페르난데스 부통령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페론대학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2003년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영부인으로 대통령궁에 들어갔고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남편으로부터 대권을 넘겨받았다. 세계 최초의 부부 연속 대통령 당선이었다. 그는 2011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4년 뒤 우파에 정권을 내주고 퇴장했다. 그러나 그는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대통령 연임은 한 차례로 제한되지만 중임에 제한이 없다.
그는 집권 시절 “가난한 사람을 없애는 정책을 멈추지 않겠다”며 현금 복지 정책을 남발해 재정 위기를 부추겼다. 서민을 위한다며 전기·수도 요금을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공짜 노트북 500만 대를 뿌렸다.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리고 연금 지급 기준을 완화해 ‘포퓰리즘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앙정부 지출 비중은 2004년 17.4%에서 2015년 37.8%로 높아졌다.
페르난데스 부통령이 최근 부정부패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6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51건의 공공 사업을 지인인 건설 업자에게 몰아주고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페루에서는 좌파인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탄핵을 당했다. 남미에서 좌파가 잇따라 집권하는 ‘2차 핑크 타이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좌우파를 떠나 부정부패에 대해 분명히 단죄해야 나라를 정상화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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