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덕분에 마음 놓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월드컵이 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보기 위해 카타르를 찾은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가 남긴 메시지다. 이들은 주카타르 한국대사관 내에 차려진 외교부 임시영사사무소 직원들에게 “저희를 보호해주시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이같이 사의를 표했다.
또 다른 젊은 한국여성은 직접 대사관을 찾아 손으로 쓴 편지와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한국 과자를 잔뜩 담은 봉지를 전달했다. 그는 편지에 “덕분에 타지에서 안전하게 마음 편히 축구도 보고 놀고 즐기고 있다”면서 “안 보이는 곳에서 바쁘신 대사관 직원분들께 주변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한국에서 간식을 챙겨왔다”고 썼다.
외교부는 카타르 월드컵 개막 이튿날인 11월 22일부터 한국 경기가 치러진 12월 4일까지 대사관 내 임시영사사무소를 운영했다. 외교부와 국무총리실, 경찰청, 국립중앙의료원 등에서 파견된 총 13명의 인력으로 운영된 사무소는 월드컵 관람차 카타르를 방문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입출국 지원과 안전사고 방지 등 영사조력을 제공했다.
임시영사사무소의 1조 단장을 맡은 최영한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을 1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그는 “신임 재외동포영사실장으로 발령을 받자마자 첫 번째로 한 게 이번 카타르 출장이었다”면서 “한국 응원단이 모두 잘 협조해주신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잘 지나갔다”고 말했다. 주케냐 한국대사를 지낸 최 실장은 올해 1월부터 강원도청 국제관계대사로 활동했고, 카타르로 떠나던 당일 오후 외교부의 신임 재외동포영사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응원단 협조 덕에 카타르 월드컵 무사히 지나가”=최 실장은 임시영사사무소에 대해 “11월 22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그리고 같은 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각각 1조와 2조, 총 2개 조로 운영됐다”며 “어떻게 보면 외교부 내 ‘예비군’에 해당하는 신속대응팀의 한 형태”라고 설했다. 이어 “걱정한 게 무색했을 정도로 굉장히 큰 문제 없이 잘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다만 사무소 운영 기간 해프닝이 없지 않았다. 카타르를 찾은 한국인은 크게 개별적으로 응원하러 온 국민과 ‘붉은악마’에 소속돼 단체로 입국한 국민으로 나뉘는데 이들이 동시에 입국하는 과정에 수하물이 뒤섞여 200여 명 규모의 붉은악마 전체 입국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최 실장은 “한국의 조별리그 첫 경기 전날 붉은악마 응원단이 입국하는 과정에서 월드컵 로고가 박힌 기념품 등 응원 도구를 카타르 세관이 금지하며 못 들여오게 했다”며 “응원단과 별개로 입국하는 한국인이 가져온 물건이었는데 응원단 물건으로 착각해 응원단 물건까지 같이 못 들어오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붉은악마는 즉각 임시영사사무소로 전화했고, 사무소는 카타르 정부가 마련한 ‘국제영사협력센터(ICSC)’에 연락해 협조를 요청했다. 더불어 공항 세관 및 유관기관과 협력한 끝에 붉은악마 입국 문제를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 붉은악마 원정단장 박모씨는 임시영사사무소에 파견됐던 배준익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 재외국민안전과 사무관에게 직접 연락해 사의를 전했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해 사무소 운영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해 애로를 겪기도 했다. 최 실장은 “당초 16강 진출을 감안해 사무소 운영을 이틀 정도 여유 있게 계획했지만, 그래도 이틀 더 연장하게 됐다”면서 “2조로 남아있던 직원들이 이를테면 총대를 멨다”고 전했다. 직원들은 특히 전 세계 축구 팬이 카타르에 모여든 만큼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에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최 실장은 “결국 카타르 외교부를 통해 비어있는 아파트를 숙소로 쓰게 됐다”며 “말 그대로 비어있는 아파트여서 아무런 서비스가 없었고 모든 것을 저희가 해결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아침 식사도 각자 알아서 해결했는데 저 같은 경우 사무소 운영 기간 내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고 다른 직원들도 컵라면, 컵밥으로 식사를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카타르에서는 음주와 돼지고기 섭취가 불가능해 이를 둘러싼 정부의 우려도 컸다. 다만 최 실장은 “카타르 정부가 ‘팬 페스티벌’이라는 특정 구역에서만 음주를 허용하는 등 관리를 잘했다”며 “응원하러 오신 분들도 통제를 잘 따라주셨다”고 했다. 이 밖에도 사무소 직원들은 카타르 해변에서 해파리에 쏘인 국민, 현지에서 현금과 휴대전화 등을 분실한 국민에게 도움을 제공했다고 최 실장은 설명했다.
◇“카타르서 귀국 직후 기니만 유조선 납치사태 수습”=최 실장은 지난달 26일 새벽 2시 카타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당일 오후 5시경 인천에 도착했지만, 시차에 미처 적응할 틈도 없이 이튿날인 27일 바로 출근해 상황회의를 주재했다. 주중이 아닌 일요일이었음에도 서아프리카 기니만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이 탑승한 급유선이 국적 불명의 해적에게 납치를 당한 까닭이다. 다행히 한국인 2명을 포함한 선원 전원은 최 실장이 귀국길에 오르던 무렵 해적들에게서 풀려난 참이었다. 최 실장은 “다행스럽게 사건이 잘 마무리됐고 제가 돌아와 사후 처리 과정 등을 담당했다”며 “저로서는 오히려 숟가락만 얹은 꼴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실장은 “2018년 외교부에 해외안전지킴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직원들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서며 항상 상황을 모니터링(관찰)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센터를 통해 (외교부 등에) 전파가 됐고, 센터 체계와 지침에 따라 바로바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한 것 같다”면서 “박진 장관께서 (재외국민 안전과 관련한) 대응에 관심이 많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장관의 관심과 독려가 힘이 된다”고 언급했다.
최 실장은 내년 1~2월 중 기니만 인근 해역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인이 탑승한 유조선 납치 사태가 최근 빈번해진 가운데 내년 3~8월 조업이 활발해지는 기간을 앞두고 또 다른 납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최 실장은 “인근 공관장들과 협의도 하고 현지에 나와 수산업에 종사 중인 우리 동포 기업 관계자들과도 얘기를 나눌 계획”이라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지 기관들도 가능하면 방문해서 직접 협의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외교관도 결국 공무원...‘국가·국민 위해 봉사’ 늘 염두 둬야”=외교부 내 실국 중 가장 큰 재외동포영사실장을 이끄는 그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재외동포청 출범과 관련해서도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외교부는 재외동포청 신설을 통해 향후 재외동포들에게 국내 수준의 ‘원스톱’ 민원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최 실장은 “재외동포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고자 하는 요청과 시도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추진이 잘되지 않았다”며 “새 정부 국정과제로 포함되며 동력이 얻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재외동포들이 받아들이는 측면에서도 외교부 내에서 한 파트로 재외동포 업무를 하는 것과 전담 조직, 독립기관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 같다”고 내다봤다. 외교부 및 재외공관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부가 꽤 오랜 기간 숙제로 갖고 있고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문제”라면서 “동포청 출범을 동력 삼아 관련 부처들과 잘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2018년 11월부터 주케냐 대사를 지냈던 최 실장은 현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정부의 방역 정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주케냐 중국 대사와 함께 출연했던 방송”이라며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는데, 통제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국가(중국)와 통제를 최소화해 대응하는 국가(한국)를 대비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내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드라이브스루’ 검사소 등이 한참 외신에 알려질 때였다”며 “결론적으로 어느 국가의 방식이 더 좋다는 방향을 잡고 한 방송은 아니었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한국의 방역 정책을 알릴 기회가 됐다”고 회상했다.
1991년 외교부에 입부한 최 실장은 내년으로 외교부에 몸담은 지 33년이 된다. 그는 “외교관이라고 하면 되게 거창한 것처럼 보이지만 외무 공무원이라는 표현에 들어있듯 결국 공무원”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늘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본부에서 근무할 때도, 공관 나가서 생활할 때도 그 부분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라며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게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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