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6년 묵은 대학 설립·운영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대학의 증원과 대학 간 통폐합 등을 자유롭게 하는 등 대학 규제를 과감하게 풀기로 한 것은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대전환기를 맞은 상황에서 수십 년 전 교육 환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낡은 규제가 대학 혁신과 인재 양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학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자율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고등교육 개혁을 이끌어내고 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대학 혁신 걸림돌' 4대 요건 완화=먼저 대학들이 자유롭고 혁신적인 교육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며 끊임없이 개편을 요구해왔던 ‘4대 요건’이 대폭 완화된다. 4대 요건은 대학 설립·운영 규정에서 대학 설립을 위해 갖추도록 정한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의 기준이다. 해당 규정은 1996년 제정돼 26년간 적용돼왔으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학생 수가 급감하고 온라인 수업 등이 확대되는 현재의 교육 환경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먼저 대학 시설·건물(교사)은 인문·사회를 제외한 나머지 자연·공학·예체능 계열의 기준 면적을 타 국가 사례와 국토교통부 최소 주거 면적 기준 등을 참고해 14㎡ 수준으로 완화한다. 현행 기준 면적은 인문·사회 계열이 12㎡, 자연·공학·예체능은 각각 17·20·19㎡다. 교지와 관련해서는 대학 설립 시 적용됐던 별도의 기준을 없애고 건축관계법령 및 관할 지역 조례상의 건폐율·용적률에 따라 건물 면적에 필요한 토지만 확보하면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본다. 교원의 경우 일반대학의 겸임·초빙교원 비율을 기존 5분의 1 이내에서 3분의 1 이내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하고 수익용 기본재산은 당초 규정의 취지를 살려 학교법인이 충분히 수익을 창출해 대학에 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아울러 기존에는 캠퍼스의 교사·교지 확보율이 100% 이상이어야 대학이 일부 학과를 새로운 캠퍼스로 이전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새 캠퍼스의 시설 여건만 갖추면 가능해진다. 또 대학·전문대, 대학·산업대 등이 통합하는 경우 정원을 감축하도록 한 조건을 삭제해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대학 간 통폐합을 촉진하기로 했다.
◇대학별 특성화 위한 정원 조정 자율화=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특성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원 조정도 훨씬 자유로워진다. 2024학년도부터는 교원 확보율 요건을 폐지한다. 기존에는 대학이 총 입학 정원 범위 내에서 학과(부)를 신설·통합·폐지하거나 학과 간의 정원을 단순 조정하려는 경우에도 대학 전체 교원 확보율을 전년도 이상 유지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총 입학 정원 범위 내에서는 완전히 자율적으로 정원 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대학이 교원 확보율 때문에 탄력적으로 구조를 개선하기 어려웠으나 앞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등 급속한 변화에 대응해 자율적으로 특성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 지방대는 결손 인원이나 편입학 여석을 활용해 분야에 관계없이 학과를 신설할 수 있다. 앞서 교육부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 대책의 일환으로 첨단 분야에 한해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했으나 지방대는 학생 모집난을 고려해 첨단 분야를 포함한 전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4대 요건 중 교원 확보율 기준만 충족해도 정원을 순증할 수 있다.
아울러 대학이 전문대학원을 신설할 때 필요했던 교원 확보율 및 교사 시설 등의 확보 기준이 완화된다. 또 대학원에 박사과정을 신설하고자 하는 경우에 요구하던 교원의 연구 실적 기준 역시 앞으로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달 중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4학년도 학생 정원 조정 계획을 대학에 안내할 예정이다.
◇'대학 살생부' 대학 기본역량진단 폐지=‘대학 살생부’로 불린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지난해 평가를 마지막으로 폐지하고 새 평가 체제가 도입된다.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교육부가 전국 대학의 기본적 교육 역량을 진단해 재정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평가로 2015년부터 3년 주기로 실시해왔다. 평가에서 재정 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되면 재정 지원이 중단되고 정원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 고등교육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평가가 대학별 여건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평가라는 지적이 나왔고 대학들은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호소해왔다.
2025학년도부터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 진단에 따른 경영위기대학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기관 평가 인증에서의 미인증 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일반 재정을 지원하는 내용의 방안이 협의됐다. 교육부는 이번 협의안을 바탕으로 시안을 수립한 후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초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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