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입법 논의가 시작된 뒤 반도체 분야 투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5월 ‘반도체과학법’ 입법 논의가 개시된 후 2년 7개월 동안 미국에서 총 1956억 달러(약 256조 원) 규모에 이르는 42개의 새로운 설비투자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이로 인해 만들어질 일자리는 3만 9000여 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8월 반도체 시설 등에 총 520억 달러(약 68조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K칩스법)이 8월 발의됐으나 더불어민주당의 제동으로 넉 달 넘게 표류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반쪽짜리 입법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K칩스법의 하나인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은 15일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겨우 넘었다. 이 개정안은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조정할 수 있게 하고 특화 단지 인허가 통보 기간을 15일로 단축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핵심 법안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반도체 투자세액공제율을 각각 현행 6·8·16%에서 20·25·30%로 확대하자는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안에 민주당이 ‘특혜’라며 대·중견기업 공제율을 10·15%로 하자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의 자국 시설 투자액에 25%의 세금을 공제해준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5년까지 무려 187조 원을 지원한다. 글로벌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와 미국·일본 기업 간의 반도체 협력이 가시화해 자칫 글로벌 전쟁에서 K반도체만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다. TSMC가 4분기에 약 26조 원의 반도체 매출을 기록해 2분기 연속 삼성전자를 제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내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후폭풍이 두려워 관련 장비 매각을 국내 기업만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총성 없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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