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다수 대학의 학과에는 정치학과와 경제학과가 분리돼 있지만 사실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래서 경제학은 처음부터 ‘정치경제학’이었는데 계량적 방법론이 발달하고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치 변수를 경제 분석에서 제외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경제학은 정치학과 완전히 분리됐다. 그러나 학문의 성격이 변했다고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정치와 경제가 복잡하게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가 경제를 융성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식시키기도 한다. 반면 클린턴이 대선에서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정권 교체를 좌우한 가장 큰 변수는 언제나 경제였다.
저물어가는 2022년에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주로 정치가 문제였는데 지금은 경제도 매우 심각하다.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패권 전쟁이 겹치면서 수출로 성장해온 우리나라는 문자 그대로 퍼펙트 스톰 앞에 놓여 있다.
국내외 모든 경제 전문 기관들은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만 2.0%로 예측했고 나머지는 모두 1%대로 예측했다. 매 10년 단위로 예측한 잠재 성장률은 더욱 심각하다. 2020~2030년은 1.89%인데 2030~2040년은 0.69%이고 2050~2060년대는 마이너스로 예측하고 있다. 0.7%대 세계 최저 출산율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생산성은 정체 상태인데 노동계의 파업은 계속된다.
한국 경제의 주축인 정보통신기술(ICT)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1월 ICT 산업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2.5%나 줄어든 166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주축인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 컴퓨터, 주변 기기 등 모든 분야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ICT 분야의 어려움은 경제 전체의 위기로 직결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과 일본·대만 간의 반도체 동맹이 구성돼 소니가 디자인하고 TSMC가 생산해 애플의 여러 제품에 장착하는 상황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만 나 홀로 고군분투해 힘겹게 미·일·대만 동맹 세력에 대항하고 있는데 미국과의 협업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향후 20년간 약 270조에 달하는 막대한 시설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런데 대한민국 국회의 고매하신 의원님들은 법인세율 3% 인하에 합의하지 못해 법정 시한이 한참 지났어도 내년 예산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5%로 올린 후 유지하고 있는 법인세 최고세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른 나라들은 앞다퉈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고 있고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기상천외한 프레임을 내걸고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유연하게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 정치요, 정치적 리더십이다.
이 시점에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을 생각해 본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그는 선수 생활의 미래를 걸고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고 덕분에 우리 팀은 원정 16강에 올랐다. 국민 모두 손 선수의 희생과 리더십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다른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뛰었는데 내가 잘못했다고 자책했다. 경기에 이겼을 때도 다른 선수들의 공으로 돌리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더욱이 예비 선수로 함께 가서 등 번호도 없었던 오현규 선수를 위해 모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상금을 대신 줬다니 그들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월드컵 챔피언이 아니겠는가.
왜 우리 정치에는 이런 지도자가 없을까. 잘못된 것은 모두 남의 탓이고 잘된 것은 나의 공이라 자랑하는 사람들. 자신이 집권했을 때와 남이 집권했을 때 같은 사안에 대한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사람들. 선거를 앞두면 상황에 따라 선거의 규칙부터 내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사람들. 당 뒤에 숨어 개인적 범죄에 대한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사람들. 그들에게 묻는다. 월드컵 대표팀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생각한다면 당이 아니라 이 나라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안에 합의하라. 벌써부터 손 선수가 은퇴하면 대통령으로 뽑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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