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노조 전반에 만연한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개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덕수 총리는 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조 활동에 햇빛을 제대로 비춰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처럼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 노동조합법상 외부에서 노조의 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 규정은 없다. 조합원이나 행정 관청이 회계 결산 결과에 대한 자료 열람을 청구할 수 있지만 회계감사나 회계장부 등 자료 청구는 불가능하다. 거대 강성 노조의 회계 내역이 불투명할 뿐더러 이를 감시·감독할 시스템마저 전무했던 이유다. 민주노총의 전체 예산은 2000억 원에 근접할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추산이다. 민주노총은 “매년 감사를 받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의원 대회에서 구두로 보고하는 수준인 데다 내부 인사를 감사로 임명해 ‘짬짜미 감사’라는 지적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조 간부의 ‘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조합비 3억 7000만여 원을 빼돌린 전 민주노총 지부장은 4월 실형 선고를 받았으며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간부도 6억 원 상당의 조합비를 유용한 혐의로 처벌됐다. 최근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 시도도 “지회를 ATM기 취급하고 있다”고 ‘깜깜이 회계’를 비판하면서 촉발됐다.
해외에서는 노조가 회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년에 25만 달러 이상 예산을 운용하는 노조는 노동부에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영국도 노조 회계에 대한 행정 관청 연례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되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 확보는 기본 책무이다. 노조가 진정 노동자를 대변하려면 살림살이를 노조원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국고 지원을 받는 단체에 대해서는 감사원 등이 엄정하게 회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구려서 그러느냐”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노조 스스로 환골탈태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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