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내년 2월부터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공급 중단 등으로 급등한 가스 가격을 인위적으로 눌러 가격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하며 “적절한 대응”을 시사했다.
19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에너지장관 회의를 열고 천연가스 가격 상한선을 유럽 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시장 기준 메가와트시(㎿h)당 180유로로 합의했다. 3거래일 이상 180유로를 넘는 가격이 지속되고,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보다 35유로 이상 비쌀 경우 가격 인상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일단 가격 상한제를 적용하면 최소 20일간 유지된다. 요제프 시엘라 체코 산업장관은 “EU는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중요한 협의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을 두고 수 개월간 협상을 지속해왔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상한선인 ‘㎿h당 275유로’에 회원국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현재 가스 선물가격이 100∼120유로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275유로로 가격을 제한하는건 효과가 없다는 회원국과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회원국이 나뉘면서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EU는 당초 제시안보다 상한선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상한제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즉각 상한제를 푼다는 내용을 포함한 절충안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공급 안보나 재정 안정성, EU 내 가스 공급 등에 위험성이 확인되거나 가스 수요 증가가 예견되는 경우 즉각 상한제 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회원국간 입장차가 컸던 만큼 이날 결정은 27개 회원국간 만장일치 대신 ‘가중다수결제’로 이뤄졌다. 가중다수결제는 회원국의 55%인 15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찬성한 국가들의 인구가 전체 EU 인구의 65%를 넘기면 합의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투표에서 헝가리가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고,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는 기권했다.
러시아는 “시장 가격에 대한 공격”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EU의 합의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원유 가격상한제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EU는 이달 초 러시아산 원유 가격의 상한액을 배럴당 60달러로 합의하고 지난 5일 시행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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