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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은 '뿌리' 찾는 여정…아픈 역사 담았죠"

■카자흐스탄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

고통스러웠던 고려인 삶 알리고파

왜 카자흐에 있는지 의문에서 출발

강제이주 잊지 않으려 벽화도 제작

역사적 문제의식 작품에 녹여낼 것

카자흐스탄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를 다룬 것도, 내가 지금 한국의 광주까지 온 것도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무릎관절 치료를 위해 방한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71)는 19일 광주광역시의 한 병원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림은 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떠나는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951년 고려인 최초의 정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바스토베에서 태어난 문 작가는 스탈린 시기 벌어진 고려인 강제 이주의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다. 1977년 이후 20년간 국립 고려극장 주임 미술가로 활동하며 고려인 지도자와 동포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한국에서 몇 번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문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고려인인 자신이 왜 카자흐스탄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소련에서 스탈린 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개혁·개방을 내세우기 전까지 가족 누구도 이러한 물음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고려인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워낙 심했다”며 “이 때문에 어머니는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와야 했는지,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 고려인문화원 벽면에 있는 강제 이주 열차 벽화.




문 작가의 시선이 언제나 고려인 강제 이주에 맞춰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조상들의 시련과 역사가 시작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곡동에 세워진 고려인문화원 건물 벽에는 달리는 열차를 묘사한 타일 벽화가 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자행된 고려인 강제 이주 사건의 진실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문 작가가 만든 벽화다. 그의 대표작 ‘1937 강제 이주 열차’ 역시 마찬가지. 2017년 강제 이주 80주년을 맞아 그린 이 그림은 총을 든 소련군과 열차 안에 갇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고려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내가 왜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야 했는지, 우리 아버지·어머니·할아버지·할머니가 왜 이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그림에 담았다”며 “이를 통해 고려인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문 빅토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37년 강제 이주 열차’.


문 작가는 고려인 화가 중 많은 이가 강제 이주를 다룬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역사의식을 갖고 작품을 만든 이는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문제의식이 깊지 않다 보니 작품도 거의 다 비슷하다. 반면 그는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정하지도 않았다. 문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그림을 그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 작가는 자신이 문씨 성을 가졌다는 것만 알 뿐 어떤 문파인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이곳저곳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것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앞으로의 작품은 내 뿌리를 찾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제목도 정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가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내가 왜 한국으로 또 광주로 와야 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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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기자 여론독자부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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