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장기금리의 변동 폭을 ±0.5%로 확대하며 지난 10년간 고수해온 초완화적 통화정책 전환의 첫발을 내디뎠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4월 이후 통화 완화 정책 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한발 앞선 ‘깜짝’ 발표다. 구로다 총재는 이번 결정에 대해 “금리 인상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외신들은 “사실상의 금리 인상”이라며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금리를 올리지 않았던 일본이 오랜 완화 정책에 작별을 고했다”고 평했다.
일본은행은 그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해왔다. 일본은행이 인위적으로 금리를 억누르는 사이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외화 유출 우려도 높아졌다. 극심한 엔저 현상과 인플레이션도 일본은행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엔·달러 환율은 10월 한때 150엔을 돌파하며 3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0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 대비 3.6% 올라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경기 부양을 목표로 강력하게 추진해온 대규모 금융 완화책의 유연성을 높이는 등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초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입장이었지만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면서 “사실상의 금리 인상으로 해외와의 금리 격차를 줄이고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로다 총재는 이번 장기금리 변동 폭 완화를 금리 인상 신호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시장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며 “금융 완화 정책의 효과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금리 인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통화 완화 정책의 전환에 대해서는 “출구전략의 첫걸음이 아니며 이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날 장기금리 변동 폭을 손본 것과 달리 단기금리는 -0.1%로 동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일본은행은 장기국채 매입 규모를 내년 3월까지 한 달에 7조 3000억 엔(약 71조 원)에서 9조 엔(약 88조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은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내년 4월부터 초저금리 통화정책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23년은 일본 통화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공동 성명이 채택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인 데다 4월은 구로다 총재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다. 일본 정부가 구로다 총재가 물러난 후 후임 총재와 함께 공동성명의 표현을 재검토하고 통화정책의 ‘새 판’ 짜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시아 금융시장도 이날 일본은행의 결정을 정책 전환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며 요동쳤다. 코로나19 재확산에 의료 시스템 붕괴 우려가 커진 중국에서도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성분지수가 각각 1.07%, 1.20% 하락 마감했다. 세계 최대 채권국인 일본이 긴축으로 돌아설 경우 자본이 일본으로 유입되고 전 세계적으로 차입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스(SSGA)의 응켕시앙 아시아태평양 채권부문 대표는 “일본에서 초저금리가 서서히 회수되기 시작한다는 신호”라며 “투자자들이 이번 조치의 의미를 평가하며 향후 몇 주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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