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의무자가 해외여행 허가 기간 안에 귀국하지 않고 뒤늦게 입국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처벌을 피하려고 귀국을 미뤘다면 그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이다.
20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45)에게 면소(형사소송 요건이 결여돼 유·무죄 판단 없이 재판 종결)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14살이 되던 1992년 7월 미국으로 출국해 해외 생활을 해왔다. 제1국민역에 편입된 18세부터는 당시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의 ‘국외여행 연장 허가’를 받아 4번의 기간 연장이 이뤄졌다.
그런데 최종 국외여행 허가 기간 만료일인 2002년 12월 31일 이후 A씨는 추가 기간 연장 없이 잠적했다. 병무청은 2003년 4월 A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A씨는 비자 연장이 불가능해진 2005년부터는 불법체류 상태로 미국에 거주했고 학업도 중단해야 했다.
A씨는 2017년 4월 입영의무 면제연령(36세)을 넘긴 41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귀국했고 곧장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A씨의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인 2002년 12월 31일부터 3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되는데, A씨에 대한 기소는 15년 뒤인 2017년 12월에야 이뤄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2심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A씨가 병역법 위반이라는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계속 머물러왔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A씨가 이미 4번에 걸쳐 기간 연장 허가를 받은 바 있기 때문에 병역법을 위반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이 A씨의 공소시효 기산점을 ‘국외여행 허가 기간 만료일(2002년 12월 31일)’부터 본 것은 옳지만, A씨가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귀국을 미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범인이 가진 여러 체류 목적 중 하나로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이 포함돼 있다면 공소시효는 정지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은 범행의 공소시효가 언제 시작되는지에 관해 하급심의 판단이 통일돼있지 않은데, ‘국외여행 허가 기간 만료일’임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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