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나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한 인생선배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 맞는 인생 선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은어 중에 X언니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맞는 여성들의 자매결연을 뜻하는 말로, 당시 X언니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주로 학교생활의 적응을 돕거나 교환 일기를 쓰며 끈끈한 우정을 다졌다. 그러다 X언니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제는 선후배의 교류 자체도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다시 X언니를 말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스물아홉으로 돈도 사람도 꿈도 잃고 이제 그만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김얀의 글을 보고 희망을 발견한 백요선, 서른아홉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상경해 산전수전 다 겪다가 연소득 오백에서 드디어 월 천 클럽으로 입성했지만 마음 한구석 늘 예술에 관한 갈증으로 목말랐던 김얀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2년 넘게 하우스 메이트로 지내며 서로의 일과 삶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 <나의 X언니>는 겁 없고 이상한 언니 김얀과 은은하게 미친 동생 백요선이 맺은 ‘X 결연’과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서로 ‘티키타카’가 잘 통해서 밤새 이야기하다 보니 내밀한 속사정까지 알게 되었고, 김얀은 백요선의 모습에서 십년 전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백요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오히려 김얀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백요선은 아예 ‘김얀집’(김얀이 셰어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집) 거실로 이주하게 됐다.
한 집에서 동고동락한 지 이제 3년 차, 백요선 김얀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이야기하고 함께 걸으며 고민을 나눈다. 어쩌다 서로에게 집도 절도 다 내어준 사이가 되었는지 신기하면서도,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닮게 마련이므로 그저 매일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서로를 관통한 시간과 두 사람의 성장에 관한 교환 일기이자, 가장 든든한 가족이 되어간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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