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단기자금 경색과 한국전력의 고금리 채권 발행, 은행채 발행 등으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혼란이 연말 퇴직연금의 대이동으로 인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이 각 금융회사들에 과도한 금리 경쟁을 자제하고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본격 가동하는 한편 연말 유동성의 관리를 적극 요구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다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300조 원을 넘어 빠르게 성장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연말 집중된 자금 이동 현상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는 자산 시장의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가입 기업이나 근로자들에게도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분산이 필요하다.
연말 12월 자금 대이동 현상은 퇴직연금 시장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말 말일에 추가 부담금을 납입함과 동시에 기존 적립금을 재투자하기 때문이다. 2021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95조 6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기업들이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이 171조 5000억 원, 근로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이 77조 6000억 원이다. 대략 임금 상승률(5%)만큼 추가 부담금이 발생한다면 올해 14조 원 이상이 새롭게 납입됨과 동시에 기존 DB형 자금 100조 원 이상이 재투자될 것으로 추정된다. 연말 높은 금리를 제시한 퇴직연금 금융회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산 운용을 위해 매입했던 채권 등의 매도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자산 시장이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국내외 금리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자산 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올해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연말 자금 이동의 집중은 비단 시장의 불안 요소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낮추는 또 다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특정 시점에 자산의 매도나 매수가 몰려 상대적으로 불리한 가격에 매매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자산의 분산뿐만 아니라 투자 시점의 분산이 기본이다. 이른바 적립식 투자 효과는 이와 같은 맥락이다.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하는 많은 기업들이 말일에 적립금을 집행하는 이유는 퇴직연금이라는 비용을 미리 부담할 필요 없이 법정 기한에 넣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경제 환경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행위가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연말 자금 집중으로 인한 리스크가 더 클 수도 있다. 정부 당국도 연간 추가 부담금을 매년 말 1회 적립에서 벗어나 반기 또는 분기 단위로 적립 시기를 분산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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