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의 유연화에 초점을 맞춘 노동 개혁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화는 우리 노동시장의 해묵은 숙제로 매우 환영할 만하지만 고용 조정의 유연성이라는 핵심 이슈가 포함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1998년 외환 위기 당시 노동시장 구조 조정을 위한 정리 해고가 노사정 합의로 도입됐지만 대기업 및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강성 노조의 반대로 인해 실제 정리 해고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업들이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이라는 고비용 방식에 의존할 정도로 고용 조정의 경직성은 높으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도 확인하고 있다.
해고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이윤밖에 모르는 사업주가 근로자를 무분별하게 해고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를 위한 프레임일 뿐 노동시장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근로자 없이 이윤을 벌 수 있는 기업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이윤이 클수록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면서까지 붙잡아두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수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경제의 한 모퉁이에서는 언제나 구조 조정이 진행 중이며 그 과정에서 사양산업과 한계 기업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해고를 못 하게 한다고 해서 그 일자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용 조정이 안 되면 기업들이 퇴출되는 방식으로 좀 더 높은 비용이 드는 구조 조정이 이뤄질 뿐이다.
고용 조정의 유연성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근로자와 경제에 득이 된다는 점이다. 경제는 생산성이 낮은 한계 기업들이 퇴출되고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기업이 그 자리를 메꾸면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는 소멸되고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신진대사가 발생하는데 해고가 어려우면 이러한 신진대사가 위축되고 채용이 줄어든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부담 없는 소개팅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상대방과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아무도 그 소개팅에 나가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채용해서 같이 일해보다가 그 근로자가 기업에 잘 맞지 않을 경우 쉽게 해고할 수 있으면 그만큼 부담이 적기 때문에 채용도 활성화된다. 반면 해고가 어려우면 기업은 잘 맞는 근로자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경우 채용을 꺼리게 되고 능력이 입증된 경력자를 선호하며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된다. 1998년 이후 비정규직 고용이 빠르게 증가한 것도, 우리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서 지원자들을 까다롭게 선별하는 것도, 자동화율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해고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보는 시각이 아직도 곱지 않다. 고용 안전망이 완비되지 못한 채 겪었던 1998년 외환 위기의 대량 실업이라는 쓰라린 경험이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일자리가 그대로 유지될 수도 없고 신산업이 계속 등장하는 역동적인 경제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생산성 높은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그런 일자리에서 채용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고용 조정의 유연성이 그 전제 조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좁아진 취업문 때문에 대졸 학력에도 불구하고 구직난에 허덕이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시장 원리를 애써 외면하며 강제적 정년 연장,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등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이기도 하다. 청년 일자리를 다시 넓히기 위해서라도 고용 조정의 유연성은 반드시 제고돼야 한다. 또한 실직 근로자의 재취업을 지원할 수 있는 고용 안전망을 효율적으로 확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원활한 일자리 신진대사를 위해 지금까지 말로만 해온 유연 안정성을 이제는 제대로 실천에 옮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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