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세액공제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단절시키는 것이고 후배들에게 희망 고문을 주는 것입니다.”
정부의 기습·편법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축소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자 평생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 달려온 학계·산업계의 거인들이 낸 성명서다. 차라리 반도체 사업을 접고 싶다고 망연자실하는 중소·중견기업인들의 성토도 끊이지를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밝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이 경쟁국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의 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중국은 고급 공정 반도체 기업에 대해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고 유럽도 기업 투자의 20~40% 세제 지원을 추진한다. 대만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우리보다 5% 이상 낮을 뿐 아니라 반도체 기업이 사용하는 기계·장비·원자재의 수입관세를 면제하고 연구개발(R&D) 프로젝트 비용의 50% 지원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TSMC보다 2.5배, 인텔의 3배 이상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파격적인 반도체 지원은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정부의 25% 투자세액공제와 더불어 지자체도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장을 짓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는 20년간 재산세 85~90% 감면을 포함해 10억 달러를 인센티브로 준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 정책을 기반으로 미국은 560조 원의 반도체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이 중 국내 반도체 기업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셋째, 정부도 반도체 산업 지원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 지원금도 경쟁국에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1조 원으로 자화자찬할 동안 미국은 69조 원, 중국은 180조 원, EU는 59조 원, 일본은 19조 원, 인도는 13조 원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경쟁국 지자체의 반도체 인프라 설치 예산을 포함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삼성전자가 위치한 미국 오스틴시는 전력·용수·폐수 기반 시설을 시에서 모두 짓고 기업은 인프라 사용 요금만 부담한다. 중국 시안시와 우시시도 제반 인프라 구축·운영 비용을 전부 부담한다. 대만도 반도체 기업에 대해 최대 5년간 토지 임대료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도체 한파가 매섭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절반가량 줄어들고 SK하이닉스는 영업적자가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도 반도체 투자 규모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중견기업인들은 직원들 월급 줄 걱정에 잠을 못 잔다. 이런 상황에서 8%의 세액공제는 불황으로 가쁜 숨을 쉬는 기업들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과 같다.
마지막 보루는 국민이다. 여당의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야당 의원이 맡는 드라마가 펼쳐진 것도, K칩스법을 한 달만에 입안하고 5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도 국민의 명령 때문이었다. 계묘년 새해가 밝는다. 다시 시작이다. 반도체는 우리 국민, 특히 미래 세대의 생명줄이다. 대한민국 반도체에 다시 봄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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