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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상의 전설' 펠레, 하늘 위 그라운드로

암 투병 끝 82세 나이로 별세

월드컵 3회 우승·1281골 기록

브라질, 사흘간 애도기간 선포

2009년 IOC 코펜하겐 총회에 참석하며 인사하는 펠레. AFP연합뉴스




30일 파라과이의 남미축구연맹 건물이 펠레를 추모하는 이미지로 장식돼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 산투스의 축구 팬들이 펠레 추모를 위해 모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축구 황제’ 펠레는 브라질 국민에게 축구 이상의 존재였다. 30일(한국 시간) 펠레의 별세 소식에 브라질 전역이 슬픔에 빠졌고 브라질 정부는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대장암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펠레의 본명은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 우리에게 익숙한 펠레는 사실 별명이다. 1940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태어난 펠레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구두닦이로 일하기도 했다. 축구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동네를 휘저었다.



열여섯의 나이로 브라질 명문 산투스FC에서 프로에 데뷔한 펠레는 1년 만에 출전한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1958 스웨덴 월드컵 4경기 6골로 브라질에 사상 첫 우승컵을 안겼다. 1962년 칠레 대회와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브라질을 정상으로 이끈 펠레는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한 유일무이한 선수로 기록돼 있다.

펠레가 브라질 대표팀과 클럽팀 공식전에서 넣은 득점은 757골이다. 하지만 브라질축구협회와 펠레 본인, 그의 소속팀이던 산투스가 주장하는 득점은 1283골이다. 여기에는 친선 경기와 투어 경기 득점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정확성은 떨어진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집계로는 1366경기 1281골이다.

“이전의 축구는 그저 스포츠였지만 그는 축구를 예술로 바꿔놓았다”는 후계자 네이마르(30)의 말처럼 펠레는 축구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팀 에이스의 상징이 됐고 오버헤드킥의 시초도 펠레로 알려져 있다. ‘펠레 스코어’와 ‘펠레의 저주’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펠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상에 누워 브라질 후배들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응원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펠레의 마지막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그를 이은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가 펠레가 바랐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유족에 따르면 펠레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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