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활용하는 안을 고심 중이다. 앞서 한국 대법원은 일본 피고 기업들에 징용 피해자 1명당 1억~1억 5000만 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는데, 이를 그대로 이행하지 않고 재단이 한일 민간으로부터 배상금을 모금,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게 골자다.
이에 재단은 피해자들에 대한 변제를 대신 수행하고자 근거 조항을 마련하는 정관 개정 요청의 건을 2일 행안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달 중 정부가 이 같은 해법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최대 난관으로는 배상금 조달 방안과 한국 기업의 선(先) 참여 방식, 일본 측 사과 등이 꼽힌다.
①최소 100억~300억 원 배상금 필요…조달 방안 숙제=우선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 조달 방안이 최우선 과제다.
3일 외교가에서는 재단이 최소 100억 원에서 300억 원 이상의 변제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징용 해법을 적용할 1차 대상으로 확정판결 3건을 제기한 원고 15명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 9건의 원고 67명 등 총 100여 명의 원고를 우선 고려하고 있는데, 1인당 최소 1억 원만 잡아도 총 100억 원의 기금이 필요하다. 앞서 대법원은 2018년 10~11월 확정판결을 통해 일본 피고기업들에 원고당 1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과 일부 피해자에게는 2억 원씩 지급해야 할 가능성을 감안해 적어도 300억 원은 모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포스코 외에 한국도로공사 등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나머지 기업도 이번에는 움직일 것으로 본다”며 “한일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쨌든 기업 환경의 불투명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소식통은 “일본 측에서도 피고기업은 아니지만 한국에 진출해있는 여러 기업이 성의 표시 차원에서 변제금 마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②한국기업 先참여…여론 반발 부를 수도=정부는 한일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일본 피고기업 대신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첫 시작은 한국 기업이 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마무리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생겨난 이번 문제가 한국 국내 문제라는 입장을 4년째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재원 마련 초기 단계에 자국 기업이 참여할 경우 자칫 일본 측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일 기업의 공동 참여가 아닌 한국 기업의 선 참여로 재원 마련이 시작될 경우 일부 피해자는 물론 국내 여론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왜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에 책임을 묻느냐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피해자 설득과 대일교섭을 동시에 펼쳐야 하는 외교부로서는 최대 난제인 셈이다.
③피해자 요구하는 일본 측 사과 주체, 내용, 방식 모두 중요=피해자 측이 정부 해법의 마지노선으로 요구하는 일본 측 사과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일부 피해자는 앞서 일본 기업의 기금 조성 참여와 일본 측 사과가 있어야 정부 해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외교부는 일본 측 사과 주체와 내용, 방식 등을 고심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법을 발표하면 일본 측에서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일본 기업의 기여와 사과 수위에 똑같이 무게를 두고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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