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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 보기]파리스의 심판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17세기 유럽 미술계를 주도했던 바로크 미학은 그 표현이 과장되고 웅장한 양식을 표방하는 특징이 있다. 바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불규칙하고 뒤틀린 형상을 의미하듯이 이 미술 양식은 극단적인 명암 대비와 연극적인 구성 그리고 강한 운동감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모든 주제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시각화하고 관람자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복합적인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예술의 정서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미술 양식이 바로크이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유럽 사회가 극심한 종교 분쟁을 겪던 시기 바로크 미술이 가톨릭 교회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는 이유가 된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그림 속에 연극 무대와 같은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 중에서도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작품들은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 풍성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1636년 경 루벤스가 제작한 ‘파리스의 심판’은 그의 화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 속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트로이 왕국의 왕자 파리스로부터 황금 사과를 얻기 위해 경연을 펼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황금 사과를 대가로 헤라는 부와 권세를 약속했고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젊고 혈기 왕성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가 제안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스파르타 왕의 아내였던 헬레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심판의 결과는 그의 조국 트로이를 파멸로 이끌었다.



루벤스는 트로이 전쟁 서사의 시초가 되는 이 이야기를 역동적인 구성과 화려한 색채 그리고 두터운 표면 질감을 통해 현실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화면 상단의 붉게 물든 먹구름 사이로 복수의 여신 알렉토가 뱀과 횃불을 양 손에 쥐고 등장하는 장면은 파리스의 선택으로 인해 트로이가 맞이하게 될 비극적 운명을 암시해 주는 탁월한 회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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