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고초를 겪고 목숨을 잃으셨나요. 조상들의 피땀으로 일군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옛것을 들추고 서로 싸우며 비판만 하는 정치로는 발전도, 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을까요.”
독립유공자 후손인 양옥모(78) 씨는 4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자택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모두 서로 손잡고 함께 나가는 정치를 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양 씨는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 집안에서 2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경기도 양평에서 인쇄소를 하던 증조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현수막을 만들어 대한 독립을 외치는 군중에 나눠줬고 할아버지는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부상을 입기도 했다. 16세 때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든 아버지인 양승건 선생은 중국 길림민중자위군 제3군에 소속돼 한국 독립군 상사로 활동한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중국 하얼빈에서 살다 2011년 귀국해 201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양 씨는 정부로부터 한 달에 58만 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집도 다른 사람이 사는 단독주택에서 방 한 칸 얻어 살고 있다. 어려움을 호소할 만도 하지만 그는 인터뷰 중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감사하다’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심지어 중국에 있을 때보다 100배 더 부자라고 생각한다. 양 씨는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지원도 받고 있고 헤어져 있던 언니도 만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며 “저축을 할 정도로 풍족하게 지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행복하고 부자라고 생각한다”며 현재를 평가했다.
양 씨는 국적 취득 후 9년간 쉬지 않고 봉사 활동을 다녔다. 처음에는 이웃이 손을 이끌고 나갔지만 지금은 나라가 자신을 도와줬으니 자신도 어느 정도 보답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잠시 접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대한적십자사에 나가 자원봉사를 하는가 하면 복지관 내 식당에서 반찬을 만들고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에 나섰다. 2020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정부 지원금 50만 원을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간호사 등을 위해 써달라고 선뜻 내놓기도 했다. 그는 “그래도 독립유공자 후손인데 그 이름값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앞장서서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김구 선생,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등만 알지 그 뒤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소리 없이 피땀 흘린 많은 유공자를 잘 모르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도 하다. 특히 김 장군을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감옥 생활까지 했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미안함까지 든다고 했다. 양 씨는 “대업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독립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탠 사람들이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라며 “이들이 갈수록 잊힌 존재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대립과 분열로 점철되는 모습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소원은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단결과 화합으로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반복하고 헐뜯기만 하는 현실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양 씨는 “서로 나쁜 것만 지적하고 비판만 하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피 흘리고 고초를 겪은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강한 나라를 이루는 첫걸음은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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