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주는 주 전체 예산의 19%를 동원해 공무원 연금 부족분을 메운다. 이는 미국 전체 주 평균인 4%를 훌쩍 넘는 수치다. 일리노이에는 현재 100만 명 이상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675개의 공무원 연기금이 있는데, 이들 연기금의 부족액이 1110억 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이는 일리노이주 전체의 연간 수입보다 268% 더 많은 수준이다.
일리노이주 내에서도 연기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꼽히는 곳은 시카고다. 2021년 회계 연도 기준으로 전국에서 기금 적립률이 가장 낮은 하위 10개 연기금 중 6곳이 시카고 지역의 연금이다. 통상 미국에서는 연금 적립 비율이 40% 이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를 받는데 시카고 소방관 연금은 이 비율이 31.1%, 경찰 연금은 34.9%에 그친다. 디트로이트 소방·경찰 연금의 경우 적립 비율이 136%, 뉴욕시 교원연금은 122%이니 같은 미국이라도 건전성 차이가 크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세금을 올려 부족분을 메우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일리노이주 각 지역의 재산세는 5~9%가량 뛰었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하니 이제는 경찰과 소방관을 줄이고 있다. 빈곤층 지원, 환경 개선, 멘탈 클리닉 같은 소외 계층이나 기초 인프라 예산 지원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에 써야 할 주정부 교육비의 90%는 교사 연금 비용으로 들어간다. 시카고의 경우 재산세의 약 80%가 연금을 메우는 데 쓰이고 있다. 일리노이주의 인구는 감소 중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조금 내고 많이 받는 구조가 고착됐기 때문이다. 일리노이주 공무원 연금은 재직 중 얼마나 납입하는지와 상관없이 은퇴 직전 급여 수준과 비례해 연금을 받는 구조로, 공무원들이 재직 중 내는 돈은 은퇴 후 받는 금액의 약 6~8% 수준에 불과하다. 시카고시 공무원들의 평균 연금은 6만 5000달러에 이른다.
왜 이런 구조를 그냥 두고 있을까. 쉽지 않다는 이유로 근본적 해결을 미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리노이주의 연금 위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917년에 이른다. 당시 주의회 기록에 “연기금 상황이 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표현한 대목이 남아 있다. 당시 의회나 주정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래 세대의 누군가에게 넘겼을 것이다. 그 미래 세대의 당사자는 또 다음 미래 세대에게 해결을 미뤘을 것이다. 수십 만 유권자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정치인은 없다. 어느 진영이 됐든, 저마다 내세운 명분이나 학술적 근거도 충분했을 것이다.
지금도 구조 개혁에 손을 대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2013년 일리노이 주의회가 거의 100여 년 만에 수급액을 제한하는 등 구조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공공기관 종사자의 퇴직 혜택을 줄일 수 없다는 취지의 주 헌법에 가로막혔다. 이후 이곳저곳에서 개헌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의회에서 주헌법 개정 투표 실시안은 처리되지 않는 분위기다.
일리노이 주정부와 산하 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재원을 늘리는 것밖에 없다. 교통 단속 카메라 수익을 연금 부채 상환에 쓰려는 시도도 있었고, 시카고의 경우 지난해 카지노를 승인하기도 했다. 다만 이를 통해 메우는 부채는 전체의 9%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정책 단체는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로 아예 도시 파산을 꼽기도 한다. 차라리 일리노이주가, 시카고가 파산한다면 채무재조정을 통해 연금 부채를 털어내거나 획기적으로 줄이고 연금 재설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와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인기 없는 숙제다. 준조세 성격의 국민연금 납부 부담이 느는 것을 환영할 이는 드물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예산의 90%가, 제산세의 80%가 연금 부족액을 메우는 데 쓰이길 원하는 이들도 적을 것이다. 우리 국회가 최적의 개혁안을 도출하고 합의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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