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및 국적 무관. 외국인 환영’
외국인근로자의 이탈률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불법체류자의 구인 구직 활동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체류자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동안 불법 취업을 장려하거나 알선하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외국인근로자의 불법 취업 활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외국인 구인·구직 인터넷 카페에는 ‘비자 X. 국적 무관. 외국인근로자 급구’와 같은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A 씨는 외국인근로자 모집 공고에 “비자가 없어도 해결해줄 수 있으니 연락 달라”며 “간단한 업무인 만큼 일을 배우면서 시작할 수 있고 한국어 능력 역시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정도면 된다”는 글을 올렸다.
합법적인 노동뿐 아니라 보이스피싱·마약운반·노래방도우미 등 범죄와 관련된 일에 동원되는 외국인 모집도 구인 온라인 구직 사이트를 통해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출신 외국인근로자를 모집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20세 이상 여성이라면 누구든 일할 수 있다”며 “비자가 없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연락 달라”는 노래방 도우미 모집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글에는 “정해진 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휴대폰을 껐다 켜기만 하면 되는 단순 업무 근로자를 구한다”는 내용도 게시됐다. 이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필요한 작업으로 지역 번호를 010 등 개인 전화번호로 바꾸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현행법상 불법체류자를 고용했을 때 고용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처벌 후에도 일정 기간 외국인 고용이 제한된다. 하지만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법 브로커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불법체류자를 찾는 것은 산업 현장에서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관계자 김 모 씨는 “이제는 현장직에 한국인이 너무 귀하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합법적인 경로로 외국인을 구한다 하더라도 일이 손에 익을 때쯤 고용허가 기간이 종료됐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불법체류자가 아니면 오래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자 등 행정 업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일손이 필요한 농민들에게 외국인근로자를 공급해주는 박 모 씨는 “비자 연장 같은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는 7080 농촌 노인들에게 단기 취업 비자를 받은 외국인근로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때가 되면 비자 연장을 도와야 하고 각종 행정 업무도 처리해줘야 하니 이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불법체류자를 쓰는 게 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남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강 모 씨 역시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상황이라 농민 대부분이 브로커를 통해 외국인을 구하고 있다”며 “사실상 사람을 골라받을 수가 없기도 하지만 일만 잘하는 사람이 오면 되지 불법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 고용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급 업체를 이용하는 고용주들도 많았다. 제조업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는 B 씨는 “도급 업체를 통해 계약된 금액만 지급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며 “복잡한 일을 다 알아서 처리해주는 데다 문제가 생겨도 ‘불법체류자인지 몰랐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으로 인력을 보내는 현지 인력사무소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력송출회사를 운영하는 꽝부홍 VXT 사장은 “한국으로 간 베트남 근로자 상당수가 불법 취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해결 방법이 없어 손 놓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 일개 회사가 해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외국인근로자의 비자연장제도 등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선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매기는 한편 법무부에서 불법체류자를 더 적극적으로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중요한 건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 비자 허들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가 더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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