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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응급의료체계 이대로는 안된다

■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우리나라는 지도상 거리와 거주 인구를 고려해 응급의료센터 체계를 구성했다. 총 70개의 진료권당 1곳 이상의 중증응급의료센터를 배치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교통 여건이나 생활진료권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데다 질환에 따라 병원의 치료 역량에 차이가 있다 보니 중증 응급 질환자가 이송된 중증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를 하지 못해 전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셈이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실패한 응급 의료 체계가 아닐까. 뇌졸중은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가장 흔한 응급 질환이다. 또한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전원되는 질환 중 수술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폐렴 다음으로 발생 빈도가 높다. 필수 중증 응급 질환 중 전원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질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한뇌졸중학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료센터 중 24시간 뇌졸중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곳이 3분의 1이나 됐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는 하루 종일 빈자리가 없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앉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그런데 국가응급진료정보망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은 12.5%에 불과했다. 또한 70% 이상이 구급차를 이용하지 않았고 과반수가 늦은 밤 또는 주말에 내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환자들이 다른 곳에서는 일반 진료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을 찾는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응급실 혼잡도가 올라가고 119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하지 않으면서 경증 환자가 중증 응급 질환자의 치료 기회를 빼앗는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환자들의 증상에 따라 해당 전문과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이 치료 시간이 예후와 직결되는 질환은 전문 의료진의 빠른 치료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24시간 근무가 필수적이지만 대다수 응급의료센터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소수의 전문의가 24시간 대기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조차 당직 후 낮 시간 진료에 대한 부담으로 정작 상급응급의료센터가 제 기능을 해야 할 심야 시간대나 휴일 근무를 기피하는 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어쩌면 지난 여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도 우리나라의 심뇌혈관 질환 치료 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4차에 걸친 응급 의료 기본계획이 시행된 지 18년이 지났다. 매년 응급의료기금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2000억 원이 넘는다. 과거 우리가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과 응급의료기금을 통한 재정투자에 동의한 것은 중증 응급 질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 때문이었다. 적어도 심뇌혈관 질환은 감당할 수 있는 응급 의료 체계를 위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 사진 제공=분당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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