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에 경제발전을 지향하던 국가정책에 맞춰 개인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던 시대에는 ‘일삶균형’이란 단어 자체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전통적인 일의 개념이 급격히 변화되고 삶의 질을 중시하게 되면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 지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간혹 어제와 오늘이 다른 요즈음에도 과연 ‘워라밸’이라는 용어를 앞세우며 말 그대로 일과 삶을 균형 있게 이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일삶균형’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다. 이제는 그 단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워라밸’이라는 용어는 최초 영국의 워킹맘협회에서 사용하던 용어라고 전해진다. 1970년대에 영국이 많은 어머니가 일의 현장으로 나왔으나, 가사나 육아 문제가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부터 점차 경제생활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일과 삶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편으로 공공이나 기업에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밸런스’, 즉 ‘균형’이라는 용어는 자칫 ‘일 50, 삶 50’이라는 형태로 오해할 소지가 매우 많고, 그런 균형이 유지되지 못하면 오히려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어찌보면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그에 대한 대응하여 삶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려보겠다는 개념이었겠지만, 실제로 수학적인 개념(50대50)으로 오해될 소지가 매우 크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개념을 알게 된 이후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워라밸의 새 의미 찾기
그런 혼란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일삶균형’의 개념을 ‘일삶조화(Work and Life Harmony)’ 혹은 ‘일삶통합(Work and Life Integration)’이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있다. 더불어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사람, 일을 생계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사람, 혹은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탈출구나 변명이 아닌지도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원래 영국에서 출발한 워라밸의 개념은 일이나 삶에 소요되는 시간을 똑같이, 즉 균형있게 잡는 개념이 아니라, ‘적합한 시간에 적합한 일(work만이 아닌 삶을 포함하는 일의 개념)을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과 삶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시간의 한계 속에서 대립하는 관계로 본다. 즉, 수학적인 개념인 ‘+(더하기)’와 ‘-(빼기)’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균형’이라는 개념을 확대 해석해 보면 ‘조화’ 혹은 ‘통합’이라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본다. 어떤 경우에는 ‘일‘의 시간이 많을 경우 있고, 다른 경우에는 ’삶‘의 시간이 더 많을 경우도 있다. 즉, 균형이란 개념을 확장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생각하는 개념이 ‘조화’이고, 아예 두 가지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통합’이다. 아마촌의 CEO 제프 베조스도 “일과 삶은 상호보완적 관계이며, 시간적 제약 속에서 대립하는 관계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일과 삶을 시소게임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상황에 따라서 균형을 잡는, 즉 ‘적합한 시간에 적합한 일이나 삶을 처리하는 개념’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새로운 생각
워라밸의 개념을 ‘적합한 시간에 적합한 일하기’로 볼 경우, 이는 바로 ‘시간 관리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워라밸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여 해결해야 한다. 아마 그 근원은 직장 내 동료 및 상사와의 관계, 업무량, 업무 우선순위, 보수, 개인적 가치, 직업적 가치, 육아, 가족 문제, 직장의 위치 등 다양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 방안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3가지 새로운 생각 혹은 해결 방안을 권해본다.
첫째, 높은 우선순위에 시간을 먼저 투자한다. 우선순위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전체적인 삶을 구성하는 요소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그 구성요소는 일명 생애설계 영역이라고 일컫는 ‘일, 관계, 건강, 여가, 재무, 사회공헌 및 주택 등’이다. 그런 영역 중에서 현재 본인이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가 높은 영역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 해결하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서 다른 문제도 해결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용어상의 구분일 따름이지 모두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을 하게 되면 건강, 관계, 가족, 재무 문제가 천천히, 동시에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둘째, 시간의 조화로운 ‘채움과 비움’을 실행해본다. 채움과 비움이라는 단어를 보면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고 ‘미니멀 라이프’라는 단어도 생각난다. 간혹 우리가 ‘비운다’라는 용어를 모든 것을 다 비우는 것으로 보는데 ‘최소한의 것만 가짐’으로 보아야만 한다.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것은 비우고, 그 자리에 필요한 것만 채워넣는 개념으로 출발해보자.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어진 시간에 기초하여 어떤 것은 최소화, 어떤 것은 최대화하는 개념이다. 이는 50대50의 개념이 아니다.
셋째, 의미있고, 도전적인 일에 시간을 사용하면서 즐겨보자. 여기서 말하는 ‘일’은 ‘직업경력’의 개념이 아닌 ‘삶 속의 일상사’로 보면 좋다. 행복과 만족감은 도전을 극복했을 때, 인내심으로 고난을 헤쳐 나갔을 때에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자신의 앞에 다가온 일이나 삶이라면 즐겁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현재 하는 어떠한 일이라도 즐기는 마음가짐으로 해보면, 궁극적인 보람과 보상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워라밸이나 워라하, 워라인은 사실상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의 제한이 안겨주는 문제 혹은 시간의 부족 문제가 애초에 ‘워라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시 오지 않을 현재 시간에 타당한 일을 하자는 것이 ‘워라밸’, ‘워라하’, 그리고 ‘워라인’이라는 용어의 기본개념이다. 새로운 해석에 따른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가볍게 한 번 출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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