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갯벌에 대해 ‘반려 권고’가 나왔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끝까지 가기로 하고 두 달 반 동안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찰거머리처럼 매달렸죠. 결국 많은 위원들로부터 ‘감동받았다’는 평가를 이끌어냈죠.”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한국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성공으로 이끈 공로로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받은 박지영(48) 문화재청 사무관은 11일 대전정부청사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이 아니면 언제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모험에 나섰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사전 반려 권고가 최종 단계에서 철회나 ‘보류’를 거치지 않고 ‘등재’로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의 반려 권고가 나온 것은 지난해 5월. 표현상 반려 권고이지 사실상 신청 거부나 다름없었다. 멸종 위기종 철새 서식지로서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면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일단 철회한 후 나중을 기약하는 것과 끝까지 시도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언제 다시 등재될지 기약이 없었고 후자는 실패했을 경우 재도전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다.
박 사무관의 선택은 모험이었다. 우선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 등 기존에 신청했던 4개 지역을 먼저 올리고 인천·아산 등 9개 지역을 나중에 추가한다는 2단계 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이 방안을 실현하려면 규제를 우려한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점이다. 그는 “총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 반 남짓밖에 안 됐다”며 “과장·주무관과 함께 지자체를 직접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였고 나중에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는 조건하에 동의를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동의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위원들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는 위원국들만 참여할 수 있다. 옵서버인 우리나라는 들어갈 수 없다. 현장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입출국도 자유롭지 못했다. 방법은 화상회의밖에 없었다. 박 사무관은 “외교부 등의 도움을 얻어 바레인·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화상회의를 진행함과 동시에 한국의 갯벌 동영상과 자료 등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며 “이렇게 설득한 위원이 11명”이라고 덧붙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바레인 위원은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지자체들의 참여를 이뤄냈나. 놀랍다. 그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계속 연락하자”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키르기스스탄은 수정 공동 발의를 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다. 결국 역대 가장 많은 17개국의 등재 지지 발언을 이끌어내며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꾸었다.
한국의 갯벌이 등재되기는 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9개 추가 지역에 대한 설득 작업이 남아 있다. 쉽지는 않다. 규제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발과 보전의 조화가 절실한 이유다. 박 사무관은 “세계유산과 관련 개발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인류 공동의 재산을 보전하면서도 개발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할 일은 세계유산 등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것도 그의 몫이다. 실제로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후 강제징용의 내용을 포함하라는 권고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신년에는 니가타현 사도(佐渡)광산을 강제징용에 대한 언급 없이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예정이다. 박 사무관은 “사도광산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세계유산 위원국으로 재도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유산에는 국경을 초월한 독보적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만의 유산이 아니라 전 세계, 나아가 미래 세대의 것이라는 신념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박 사무관은 “국제 문화 경쟁이 치열한 지금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세계유산은 곧 대한민국의 국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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