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2일 택배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인 대리점주와 계약을 맺은 택배근로자들과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과 같은 내용이다. 이번 법원 판결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하청 관계가 구조적으로 만연한 기존 제조 업계를 넘어 택배근로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일단 관련 업계의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 특고를 넘어 플랫폼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사실상 줄파업이 예고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법 제2조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기존의 노사 관계 틀을 완전히 흔드는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대리점연합회도 입장문을 내고 “원·하청 단체교섭은 대리점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대리점 경영권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판결로 택배 산업의 현실과 생태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노조의 사용자성 폭넓게 인정=최근 중노위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설을 근거로 하청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을 잇따라 인정하는 판정을 내놓고 있다. 실질적 지배력설이란 근로자의 작업환경 개선, 휴일·휴가 보상, 수수료 인상 등은 하청이 아닌 원청의 결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좌우된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의 경우 CJ대한통운과 직접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주가 아닌 원청인 CJ대한통운의 결정에 따라 택배근로자의 각종 처우 등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중노위는 지난해 12월 30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조에 실질적 지배력을 미치는 만큼 하청 사업주와 함께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놓았다. 하청 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협약 체결권이나 단체행동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판정의 방점은 교섭에 응해야 한다에 찍혔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비단 조선 업계를 넘어 최근 원·하청 간 갈등의 상징적 사례라는 점에서 당시 판정이 주목을 받았다.
중노위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초 현대제철과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하청 노조에 대한 교섭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잇따라 내놓았다. 두 판정 모두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설을 근거로 하청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봤다.
◇법원 “노조법, 직접 근로관계에만 한정되지 않아”…산업계 “하도급법·파견법 위반” 우려=법원은 이날 판결문에서 “노동조합법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어 “(이번 사건은) 집배점주(대리점)가 결정할 권한이 없는 사항”이라며 “원고가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권한이 있고 개별 집배점주들 또한 어느 정도 지배·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도 중노위의 판정처럼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교섭할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
산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CJ대한통운을 비롯한 택배사는 대리점과 택배 집배송 위·수탁계약을 맺고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따라서 택배노조의 교섭 상대방은 계약 주체인 대리점이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택배 업계 관계자는 “택배노조는 2022년 3월 점거 사태 당시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과 합의문을 작성하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와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이 표준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택배기사 노조의 교섭 주체는 대리점이라는 사실이 현장에서도 명확하게 정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택배사와 택배노조의 현장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대로 단체교섭에 응할 경우 대리점의 경영권과 독립성을 침해하게 돼 하도급법 및 파견법을 위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의 후폭풍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송현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노사 관계는 근로자와 사용자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교섭 의무를 인정한 판결”이라며 “이 같은 논리가 과연 어디까지 확대될지 상당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비단 단체교섭 의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근거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만큼 형사처벌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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