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12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으로 제3자를 통한 대위변제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대위변제의 주체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제3자 변제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 기업의 사과를 최우선시한 피해자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반일 정서 역시 자극할 수 있어 외교부는 여론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외교부는 강제징용 해법의 최종안은 아니며 일본과 추가 교섭을 해야 한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순수하게 법적 측면에서 볼 때 (배상금을)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점이 검토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8년 10~11월 일본 피고 기업에 피해자 1명당 1억~1억 50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는데 정부가 법리를 검토한 결과 제3자가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일본 측은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종결됐다는 입장이어서 수년째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령의 피해자들이 지난해에만 500여 명 숨지자 정부는 우선 제3자를 통해 배상에 나서는 고육책을 냈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강제 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들 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일본 측의 ‘호응’을 기대 또는 요구하는 게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큰 해법이라는 것이 외교부의 판단인 셈이다.
외교부는 일본 측에 재원 마련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이 끝내 거부할 경우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입은 국내 기업끼리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부정적 태도 탓에 피해자들은 정부의 이번 해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당장 피해자 측은 “일본은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는 해법”이라며 반발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홍보실장은 “한국(기업)이 먼저 피해자들에게 (기금을)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일본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책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도 “박진 장관이 그렇게 얘기했던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무엇이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외교부는 최종안이 아니라며 여론을 탐색하고 나섰다. 외교부 당국자는 토론회 직후 취재진을 만나 “정부 해법 최종안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고 지금까지 저희가 이어온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통해 일본과의 협의를 보다 가속할 수 있는 유용한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국장도 “말씀해주신 귀중한 의견을 갖고 일본 측을 만나 협상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선까지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 정부 해법에 대해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총리관저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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