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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철의 행동경제학]‘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의 위험성

한국제도경제학회 행동경제학 특별위원장

개인마다 다른 '공정의 판단기준'

동일한 행동도 관점따라 제각각

세상엔 절대적 공정은 존재 안해

'내로남불'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바라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디지털타임즈 의뢰로 한국갤럽이 2022년 12월 19일과 20일 양일간 조사해 21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조사에서 갤럽은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에게 “우리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공정’이라는 응답이 32.4%를 차지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다음으로는 평등(14.0%), 정의(13.6%), 법치(11.6%), 성장(10.1%), 자유(9.0%), 분배(5.7%) 등의 순이었다. 우리 국민은 공정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이 바라는 시대정신은 공정이라고 말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행동경제학에서 공정(fairness)은 중요한 연구 주제다. 하지만 공정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주류경제학에서 완전히 배제돼왔다. 미국의 저명한 노동경제학자인 앨버트 리스는 공정이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행동경제학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는 공정이 인간의 선택에서 다른 경제적 동기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주류경제학자들이 듣기에 매우 불편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경제학의 본류에서 아주 멀리 벗어난 공정이라는 요소가 경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러는 공정이 그동안 경제학계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평가했다.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대상·사건·결정 등에 대해 공평하고 올바르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와 레이철 크랜턴은 공정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각자의 규범, 즉 행동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기준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의 행동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해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행동 기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와 대니얼 카너먼 등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 기준에 따라 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는지 연구했다.



“동네 철물점 주인은 눈삽(눈을 치우는 삽)을 15달러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폭설이 내린 다음 날 아침에 그 철물점 주인은 눈삽의 가격을 20달러로 인상했다. 철물점 주인의 결정은 공정한가, 공정하지 않은가.”

응답자의 82%가 철물점 주인의 결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철물점 주인은 폭설이라는 불운을 이용해 눈삽의 가격을 올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물점 주인의 가격 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철물점 주인의 가격 인상은 당연한 결정이다.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경제학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세일러는 자신이 가르치는 경영대학원 학생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해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응답자들의 76%가 공정하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제 이론에 따라 응답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사람들마다 행동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각자의 행동 기준에 근거해 공정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자의 행동 기준이 다르면 타인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공정성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즉 공정은 프레임의 문제다. 절대적인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은 단지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잘못된 만남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선택적 공정은 공정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이라는 가치에 내포된 위험성을 인지하고 항상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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