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작가가 도널드 트럼프(사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강간했다며 소송을 내자 트럼프가 이를 부인하면서 해당 작가를 “미친X”이라고 부르고 “성폭행을 즐긴다고 말했다”는 허위 주장을 펼친 정황을 담은 녹취가 공개됐다. 이는 트럼프가 재판이 열리기 전에 증인 선서를 한 후 원고 측 변호인의 신문을 받으면서 증언한 내용이어서 트럼프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주요 언론 매체들에 따르면 맨해튼 소재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의 루이스 캐플런 판사는 5시간 반에 걸친 증언 중 일부분의 녹취록을 13일(현지 시간) 공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증언은 지난해 10월 19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트럼프 자택인 마라라고클럽에서이뤄졌다. 트럼프 측은 절차에 따른 증언 녹취록 공개를 앞두고 비공개 유지 요청을 했으나 캐플런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여성지 ‘엘르’ 칼럼니스트로 오래 기고해온 엘리자베스 진 캐럴이다. 그는 2019년에 낸 책에서 “1990년대 중반에 뉴욕의 고급 백화점에서 트럼프에게 강간당했다”는 주장을 폈다. 백화점에서 트럼프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친구에게 선물할 란제리를 고르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받고 함께 쇼핑을 다니다가 드레싱룸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캐럴은 시효가 지난 성폭행 피해에 대해서도 민사소송이 가능하도록 한 특별 한시법이 뉴욕주에서 시행된 것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트럼프를 상대로 폭행과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은 올해 4월 시작될 예정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캐럴이 2019년 CNN과 한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그(캐럴)는 (강간당하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며 “그(캐럴)는 강간당하는 것이 매우 섹시하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 매체들은 트럼프의 이 발언을 보도하면서 사실과는 정반대인 허위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캐럴이 책과 CNN 인터뷰에서 한 실제 발언은 “'강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간은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이유로 ‘강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 대신 ‘싸움’이라는 표현을 쓴다고도 말했다.
원고 캐럴의 변호인인 로버타 캐플런 변호사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자 “확인하고 싶다”며 “그(캐럴)가 당신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는 게 당신 증언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그(캐럴)가 (CNN의) 앤더슨 쿠퍼와 한 인터뷰에 의하면 그랬다고 믿는다”며 “나는 그(캐럴)가 강간은 섹시하다고 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캐럴이 있지도 않은 일을 주장한다며 ‘미친X(nut job)’ ‘정신병을 앓고 있다(mentally sick)’ ‘완전한 사기(complete scam)’ 등 다양한 표현으로 공격했다. 트럼프는 캐럴이 어떤 여자인지도 자신은 전혀 모른다며 ‘뜬금없이(out of the blue)’ 강간 주장이 나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번 소송이 끝나면 그(캐럴)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 정말 기대된다. 그리고 당신(캐럴의 변호인인 로버타 캐플런)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