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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 사람들] "하루에도 몇번씩 '쿵' 공습…매일 교민생사 확인"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대사 인터뷰

2021년 6월 키이우 부임…1년내 전쟁

"30여 년 외교관 생활 중 전쟁은 처음"

전쟁 발발 전 배우자·자녀 등 모두 귀국

대사관, 지난해 1월부터 비상근무체제

교민들에 '비상 키트 배낭' 제작해 배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습이 일어나고 때마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다. 이틀에 하루 꼴로 전기와 물이 끊겨 난방을 돌리지도, 씻지도 못한다. 가로등은 물론 거리에 상점들도 불을 꺼놔 오후 4시만 돼도 도시 전체가 어둑어둑하다. 대규모 공습으로 시설물이 격추될 때면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린다.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가 전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최근 상황이다.

김 대사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유선 인터뷰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민과 우리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이라고 밝혔다. 김 대사는 “본부에 보고도 해야 하고 대책도 마련해야 해서 가장 바쁜 순간이기도 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업무에 임하는 직원들을 보면 굉장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자신의 위치에서 의연하게 일해주는 직원들한테 항상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키이우에 부임한 김 대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2월 24일부터 1년여의 전쟁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임기 절반 이상을 전쟁으로 보낸 김 대사는 “외교관 생활 중 전쟁을 겪은 것은 처음이지만 저희는 경황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며 “옆에서 ‘쿵’ 폭발음이 들리고 유리창이 흔들려도 직원들이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침착, 기민, 정확, 창의 네 가지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가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교민 보호 지상과제…피해 사례 없어 천만다행=김 대사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김천영 공사 등 총 1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중에서는 전쟁이 시작된 후 키이우 근무를 자원해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도 1명 있다고 한다. 김 대사는 “제가 특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다른 직원들도 모두 가족과 떨어져 고생이 많다”고 언급했다. 김 대사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들의 배우자와 자녀 등은 정부 권고에 따라 모두 전쟁이 나기 전에 귀국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만큼 대사관 직원들이 가족과 떨어진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다. 김 대사는 “지상 과제인 교민 보호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면서 “전화와 메신저는 끊기지 않았으니 (이를 통해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덤덤히 말했다.

대사관은 현지에 남은 교민들과도 매일 연락하며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대사관 직원들이 매일 카카오톡 메신저나 전화 통화로 생사를 확인하고, 외교부 본부에 설치된 해외안전지킴센터에서도 교민들의 생사를 이중으로 확인한다. 현재 키이우에는 우크라이나인과 결혼을 했거나 현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교민 20여 명이 남아있다. 다행히도 전쟁 기간 한국 교민이 피해를 본 사례는 아직 없다. 김 대사는 “대사관으로서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교민 보호가 대사관 최우선 과제인 만큼 앞으로도 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교민 이탈이 한창 활발했던 때에는 대사관 직원들의 차로 교민들이 국경을 넘기도 했다. 김 대사는 “전쟁 전 560여 명의 교민이 키이우에 있었는데 전쟁 직전인 지난해 2월 23일까지 460여 분이 출국했다”며 “발발 당일인 2월 24일에는 100여 명이 현지에 남아있었고 이후 60여분 정도는 우리 직원들이 직접 운전하는 차로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후에도 3월 중순까지 추가로 교민 출국을 지원했고 현재는 대사관 직원까지 포함해 30여 명의 한국인이 키이우에 남은 상황”이라고 떠올렸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지난해 2월 17일(현지 시간) 현지 교민들에게 배부한 비상 키트배낭 구성품. 라디오 및 랜턴, 맥가이버툴, 구급키트, 비상용 은박담요, 우의, 파이어스틱, 호루라기 겸 나침반, 일회용 마스크, 배낭 등 12종으로 구성됐다./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대사관, 전쟁 대비해 라디오·랜턴 등 담은 ‘키트 배낭’ 제작=우크라이나에서도 2021년 11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설이 제기됐지만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설마 그렇겠느냐’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김 대사는 전했다. 그럼에도 대사관과 외교부는 지난해 1월 중순부터 전쟁 발발을 대비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고 1월 24일 교민간담회를 시작으로 한 달간 선교사회, 유학생 사회 등 분야별 교민 간담회를 6차례 개최했다. 이를 통해 육상·해상·항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출국하는 경로와 국경 검문소마다 정해진 출국 관련 상세사항 및 안전정보를 교민에게 제공했다. 특히 대사관은 비상시 필요한 ‘키트 배낭’을 손수 제작해 교민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김 대사는 “실제 전쟁이 난다는 전제하에 대비책을 준비하다 보니 생각하게 됐다”며 “라디오, 충전기, 랜턴, 판초 우의, 비상 의약품 등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실 대사관 직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만 해도 전쟁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있기는 했다”면서도 “전쟁 상황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고 했다. 특히 대사관은 교민이 탑승한 자동차 앞면과 옆면, 그리고 천장 등에 각각 붙일 수 있도록 스티커 3종을 각각 제작했다. 이에 대해 김 대사는 “혹시라도 공중에서 한국인이 탄 차를 식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어 현지 인쇄업체를 통해 총 3종을 만들었다”며 “대사관 차들이 교민들이 탑승한 차를 인솔할 때 굉장히 유용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국 교민에게 이 같은 키트 배낭을 제공한 공관은 한국 공관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사관은 또 지난해 8~9월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포격이 거세지며 방사능 유출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교민들에게 방독면과 방호복, 요오드 등을 추가로 나눠주기도 했다. ‘핵 참사’라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조치였다.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가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사재기 단 한 번도 못봐…성숙한 키이우 시민의식 느껴=김 대사는 지난 1년간 직접 지켜본 우크라이나 시민에 대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재기 현상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며 “단결해서 자유와 국가를 지켜내겠다는 단합 의지, 성숙한 시민의식을 많이 느꼈다”고 평가했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을 느끼고 난방도 없이 혹한기를 겪어내면서도 차분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과 관련해 김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요청하는 것은 거의 모든 부분”이라며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이 적극 참여해주기를 많이 요청하고 있고, 한국의 우수한 제조업 기술과 세계적 기업이 많은 데 대한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유럽 국가 위주로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에서는 한국에 대해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고 선진국으로 본다”며 “재건 과정에서 ‘한국이 적극 참여해달라’는 메시지를 크게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여러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데 대해 비상한 관심이 있다고 김 대사는 소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역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고통을 잘 알고 있다”며 “자신들의 번영한 미래상이 한국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대사는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를 향해 ‘국가재건계획’을 발표했는데, 한국의 발전 사례를 모범 사례로 쓴 적이 있다. 흔치 않은 일”이라며 “우크라이나 교육부는 지난해 가을학기 고등학교 지리 및 역사 교과서 지침을 개정하며 한국의 발전상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도록 조치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형태(오른쪽)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가 지난해 9월 19일(현지 시간) 키이우에서 세르히 쉬칼렛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 장관을 면담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양측은 이날 우크라이나 교과서 내 한국의 발전상 반영 등 교육 분야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대사관, ‘전쟁 피해’ 우크라 학생들에 삼성 태블릿 전달=이와 관련해 대사관은 우크라이나 교육부에 삼성전자 태블릿PC 6000대를 기부하기도 했다. 김 대사는 “전쟁으로 학교도 많이 파괴되고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학교도 못 가지 않느냐”며 “온라인 수업이라도 받으라는 차원에서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한국을 알리는 공공외교에 역점을 두고 추진해왔지만, 전쟁으로 공공외교 추진이 어려워져 제일 안타깝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대사는 1991년 외교부에 입부해 30년 이상 지속한 외교관 생활과 관련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상수는 우리 외교가 항상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여건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라며 “국제정세가 항상 급변하기 때문에 외교관으로서 갖는 사명감은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사는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 외교관들이 한국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외교관으로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잘 나가는 나라, 또는 건실한 중견국 대우를 받았는데 지금은 선진국, ‘글로벌 중추국가’로 여겨진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며 “한국이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주역이 될 여건은 모두 마련됐다. 앞으로 한국과 세계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어갈 자랑스러운 외교관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확언했다.

김형태(오른쪽 네 번째)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가 지난해 12월 30일(현지 시간) 키이우에서 세르히 쉬카를렛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 장관과 원격교육이 불가피한 7개 지역(드니프로·도네츠크·자포리자·루한스크·미콜라이우·하르키우·헤르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원격 수업용 태블릿 PC 6000대를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에 전달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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