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열린 북미 3국 정상회의에서 “서반구가 사상 유례 없는 수준의 인구이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지난 회계연도에 미국 남서부 국경에서 발생한 밀입국자 체포건수는 무려 240만 건으로, 이전 기록이었던 지난 해 수치에 비해 무려 60만 건이 늘어났다.
서방세계는 현재 심각한 이민 위기에 처해 있다. 기후변화로 적도 지역이 가뭄과 질병에 취약해지면서 식량재배는 물론 주민들의 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현지의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고, 팬데믹 후유증까지 커지는 상황이다. 당연히 현지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기후가 온화한 미국과 유럽을 향해 북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규모가 미국과 유럽의 정치와 정책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스웨덴과 미국·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우익 포퓰리즘은 거의 언제나 통제를 벗어난 이민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대규모 이동은 이로 인해 발생할 문화, 종교 및 인종 문제에 대한 두려움에 불을 지핀다. 서방 지도자들이 이민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서방의 정치는 앞으로 수 년 동안 포퓰리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정책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민 물결은 지난 수 십 년간 유지해온 난민제도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최근 들어 수백만 명이 망명을 요청하며 줄지어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박해의 표적이 된 피해자들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은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찾으려는 경제적 이주민들이다. 폭력과 갱 전쟁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지만, 앞서 남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이민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동일한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다. 일단 국경을 넘어온 후 망명신청을 하면 합법적 체류자격을 인정받을 기회가 커지고 처리기간도 단축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합리적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대규모 인구이동은 망명신청자와 경제적 이주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바이든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가 최근 공개한 계획은 불법 월경자들에게 상을 주어선 안 된다는 내용과 함께 기존의 망명심사 대기 프로그램(parole program)을 베네수엘라 이외에 쿠바, 아이티와 니카라과로 확대했다. 그러나 지금 바이든은 좌파와 우파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다. 이건 그가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 해 12월, 이민자 아들인 리시 수낵 총리는 망명제도가 망가졌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또한 프랑스로 들어오는 이주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일부 조치를 제안했다.
이민을 다루는 정치는 위험하다. 이전에 비해 무게중심을 오른쪽으로 대폭 이동시킨 미국의 우파는 이민에 거의 전적으로 반대한다. 오늘날 공화당원의 70%는 이민자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공화당이 이민위기 해법을 원하는지는 불투명하다. 이를 그대로 방치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 바이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이미 미국인의 다수는 남부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외부세력의 침략이라 믿는다.
민주당은 이민과 이민자에게 우호적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해진 법에 따라 입국한 이민자들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밀입국자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인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법을 지킨 자들과 어긴 자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선 안 된다.
사실 대다수 서방국가들은 더 많은 이민자들을 필요로 한다. 일부 평가에 따르면 독일은 매년 40만 명의 이민 근로자들을 필요로 한다. 경제학자들의 최근 연구는 미국의 혁신에 이민자들이 이바지한 기여도를 36%로 추산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법을 무시하는 침입자들과 이들이 자행하는 인신매매 및 혼란이 미국을 온통 뒤덮고 있다고 믿는 한 이민 친화적인 정책을 기대하리란 불가능하다. 새로운 이민시대를 열려면 무엇보다 현재의 혼란부터 꼼꼼히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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