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민주주의가 됐다. 반전·평화·자유 같은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1960년대 히피 문화와 또 다르다. BTS는 ‘버터처럼 부드럽게’, 블랙핑크는 ‘빛이 나는 솔로’를 노래했다. 정치와는 하등 관련이 없지만 세계인은 K팝에서 자유의 가치와 저항의 의지를 발견했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례들도 많다. 중국의 광전총국(한국의 방통위)이 ‘프로듀스X101’ 같은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을 검열하겠다고 발표했다. 돈과 쾌락에 대한 숭배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속내는 시청자가 투표로 아이돌을 선발하는 민주적 방식이 불쾌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태국이나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시위 현장에도 K팝이 등장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세계를 희망했다. 반정부 시위 배후에 K팝 팬들이 있다는 칠레의 정부 보고서도 논란이 됐다. 실제로 K팝 팬들은 35세에 불과한 청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콜롬비아 시위대는 정부를 골탕 먹이려고 K팝 아이돌 사진을 활용했다. 겉으로는 정부를 지지한다면서 동시에 K팝 사진을 걸어 놓는 캠페인이 대박을 쳤다. 트위터 계정을 검열하고 폐쇄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이슬람 역시 K팝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K팝이 성소수자 문화를 조장하고 선동해 무슬림 신앙을 해치고 기독교를 전파한다고 생각한다. 터키는 아예 K팝 콘서트 금지령을 고려하기도 했다.
자유와 공산, 서구와 비서구, 기독교와 이슬람. 수십 년간 이어온 익숙한 이념 대결의 장에서 K팝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문명이었다. 이 신문명은 스스로 민주주의 상징이 돼 세계 곳곳의 지배 질서와 계속 충돌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문명의 침공에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세상 모든 기성세대가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도대체 K팝이란 무엇인가. 내 결론은 간단하다. K팝은 문화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수십 년간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실로 대단한 정치 훈련 체계를 구축했다. 팬카페 조직, 대적관 교육, 스트리밍 총공격(음원 사이트 상위권 랭킹 작업), 따역따(따봉과 역따봉 줄인 말) 여론 작업, 조공 펀딩(자발적 팬 모금 행위) 등 K팝을 사랑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치적 여론 형성 과정이었다. 기성세대가 신경 쓰지 못했던 곳에서 세계의 청년들은 K팝을 통해 호된 정치적 훈련을 받았다. 이 노련한 전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고립된 청년과 연대했고 그러면서 범세계적인 민주화 흐름에 필연적인 영향을 끼쳤다.
요즘 청년을 ‘탈이념 세대’라고 한다. 586세대와 달리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그런 별명을 붙였다. 얼마나 게으른 분석인가. 다시 묻고 싶다. 정말 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념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념적인 것은 무엇이고 탈이념적인 것은 무엇인가. 전 세계 기성세대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해당 칼럼은 서울경제 1월18일자에 게재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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