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유럽연합(EU)은 흔히 탄소국경세라고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이 제도는 EU에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가격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을 경우 그 차이만큼 관세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관세의 기준은 유럽의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가격인 톤당 약 10만 원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가격이 2만 원이므로 만약 이 제도가 그대로 시행되면 우리 기업들은 톤당 8만 원의 추가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전형적인 외부 효과로 개인들의 자율에 맡겨서는 감축이 어렵고 정부의 규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도입하는 각종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킨다는 명분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무역장벽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민주당도 2021년 7월 탄소국경세 법안을 발의했는데 만약 원안대로 시행되면 2024년 1월 1일부터 화석연료·알루미늄·철강·시멘트 등 탄소 배출량이 큰 제품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켜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고 있다.
지난 가을 뉴욕 출장 중 만난 대형 운용사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 투자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에너지전환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뿐 아니라 포괄적으로는 다양한 친환경 산업과 기업에 대한 투자가 선진국 정부의 핵심 산업 정책으로 추진되고 이에 따라 민간투자 역시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이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임을 인정하고 탈화석연료를 위한 정책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탄소국경세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경우 당연히 이러한 선진국의 조처는 큰 장애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집약도가 높고 수출 비중이 큰 운송장비·금속제품·화학제품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 등 전기전자제품도 이들 제도로 중국의 수출이 감소하면 중간재 수출이 줄어드는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온난화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거대한 무역장벽이 우리 경제를 가로막을 수도 있으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의 신속하고 총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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