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9일 건설 현장의 관행처럼 이뤄져온 불법행위를 바로잡겠다며 양대 노총의 건설노조 사무실 등 14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을 단행했다. 주요 혐의는 채용 강요 및 공갈이다. 그동안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사가 노조 소속 노동자의 채용을 꺼릴 경우 노조가 채용을 압박하거나 채용하지 않는 대신 노조비 등을 요구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졌다. 경찰이 이를 불법행위로 보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올해 6월 25일까지 200일간 ‘건설 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지난해 11월 말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조합원들의 운송 방해와 물류기지 출입구 봉쇄 등 불법행위에 강력히 대응한 바 있다. 경찰이 화물연대 총파업에 이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국정과제의 1순위로 내세우며 노조의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고 천명하고 노동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역대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다 양대 노총 등 대기업 중심의 거대 노조에 부딪혀 번번이 물러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에 따라 노조의 불법행위가 근절될 때까지 경찰 등 사정 당국의 노조에 대한 전방위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도 노조의 회계 운영과 대기업 노조의 고용 세습 관행을 개선 과제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고용부는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입법안을 다음 달 발의한다. 고용부가 지난해 11월 고용 세습 조항을 둔 사업장 63곳에 대한 시정 조치에 나서자 대부분의 사업장은 해당 조항을 없앴다. 고용부는 올해 ‘공짜 노동’을 부추기는 포괄임금 오남용을 비롯해 임금 체불, 불공정 채용 등 노사 질서를 훼손하는 대표적인 행위에 대한 대응 수위도 높이고 있다.
노동계는 “개혁을 명분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대정부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 신년 초부터 노정 갈등이 심화하며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일)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진행된 압수 수색은 대통령의 사주를 받아 국정원이 메가폰을 잡은 한 편의 쇼였다”고 비판했다. 전일의 압수 수색은 서울 민주노총 본부를 비롯해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직원 자택 등 10여 곳에서 이뤄졌다.
특히 민주노총은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5월 1일 총궐기대회와 7월 총파업 투쟁을 예고했다. 민주노총보다 온건한 노조로 평가되면서 정부의 정책 파트너 역할을 해온 한국노총도 정부에 대한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현 정부의 노동 개혁을 ‘개악’이라고 비판해온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17일 연임에 성공했다. 김 위원장은 선거에서 한국노총을 상시적 투쟁 기구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한국노총도 이날 논평에서 “건설노조에 대한 압수 수색은 노동조합을 비리 집단으로 몰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정부로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노조로 돌려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라며 “이런 식으로 노동계를 고립시키고 악마화해 굴복시키려 하면 할수록 노동 개혁은 멀어진다는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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