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경상북도의 한 골프장은 외국인을 ‘드라이빙 캐디’로 고용했다가 적발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외국인은 서비스업인 골프장에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방에 위치한 탓에 캐디 수급에 어려움을 겪다가 불법을 행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국내 골프 인구가 빠르게 늘다 보니 대다수 지방 골프장은 캐디 수급에 어려움에 처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H-2(방문 취업) 비자 소지자에 한해 외국인에게도 골프장 캐디와 디봇 관리 등 분야에 대한 일용직 채용을 허가했지만 골프장 구인난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H-2 비자 소지자는 중국 교포와 고려인 등 동포들인데 이들 역시 고령화 등으로 국내 근로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 업계에서는 골프 산업이 발달한 베트남 등 동남아 근로자에게도 채용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중국 교포 등 H-2 비자에만 허용된 간병인 분야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간병 인력 부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동포 사회에만 인력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간병 인력의 국적 비중은 한국인 60%, 중국 교포 40%로 시간이 갈수록 내국인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지난해 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간병인 허용을 단계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비자 제도 신설 등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간병인 취업이 허용될지는 미지수다. 간병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대만 등은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국가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위해 영주권과 유학생 비자를 가진 외국인까지 채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외국 간병 인력 확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H-2 비자에만 채용이 허용된 급식 업체도 외국인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주방 조리 보조원을 구하지 못해 사업장 운영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단체 급식 기업은 조리 보조원의 이직률이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높아져 영양사나 조리사가 조리 보조원 역할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체 급식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급식은 간병처럼 공공 서비스 영역”이라며 “인력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H-2 비자 소지자만 채용을 허가하는 것은 단체 급식의 공공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F-4 비자와 E-9 비자 소지자에게도 조리 보조원 등의 취업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동포들을 위해 H-2 비자가 신설됐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중국 교포와 고려인 등이 고령화된 만큼 개방되지 않았던 서비스업 등에 대한 외국인 채용을 정부가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H-2 비자는 중국 교포와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 등의 국내 취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비자다. 조건은 출생 당시 대한민국 국적이거나 이들의 직계존비속 등 혈연관계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들이 고령화될수록 H-2 비자 보유자는 자연 감소할 수밖에 없고 국내 인력 부족의 대체재가 되기에도 불충분하다. 실제 2018년 25만 명을 상회했던 H-2 비자 인구는 점차 줄어들어 2021년 12만 명, 지난해 10만 명 선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외국인 채용이 가로막힌 외식 분야 등 서비스 업계에서는 불법체류자를 암암리에 고용해 외국인 고용·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키우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숙박·음식점업의 인력 부족률은 6.5%로 농림어업직(7.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 외식 업계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국내 인력은커녕 중국 교포 채용도 힘든 상황이고 서빙로봇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한 기술”이라며 “불법체류자를 몰래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호진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요식업에서 고용할 수 있는 동포 인력 25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라졌다”며 “요식업에도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허용하고 프랜차이즈 본사 등에 이들에 대한 교육을 맡겨준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최근에서야 E-9 허가 업종을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개방 속도는 더디다. 제조업과 농촌 위주로 구성된 E-9 근로자의 경우 올해 서비스업에 배정된 쿼터는 전체 11만 명 중 1000명에 불과하다. 다만 정부는 올해부터 일부 서비스업의 상하차 직종에 대해 E-9 외국 인력 도입을 허용하고 향후 인력 수급 현황을 살펴 허용 업종을 조정하기로 했다.
박창덕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국제교류협력본부장은 “인력이 부족하면 인건비가 올라가게 되고 결국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면서 “제조업 등에 국한된 E-9 외국인 근로자 취업 업종을 점차 간병과 급식 등 서비스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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