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간)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장인 스위스 다보스 콩그레스센터에 윤석열 대통령이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의 소개로 특별연설을 하기 위해 들어서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로 환대했다. 윤 대통령은 청중을 향해 입을 굳게 닫은 채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한국 정상의 다보스포럼 현장 특별연설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9년간 한국은 디지털 선도 국가로 도약했고 윤석열 정부는 아시아태평양으로 외교 지평을 확장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선언했다.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연설에 나선 윤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무게감을 표현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세계는 경제의 불확실성과 복합 위기에 놓여 있다”며 위기감을 던졌다. 이어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 기술 패권 경쟁과 다자 무역 체제의 퇴조에 따라 공급망이 분절화 양상을 보이며 재편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공급망의 교란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의 특별연설은 이번 다보스포럼의 주제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Cooperation in a Fragmented World)’과 맞닿아 있다.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대응을 비롯해 △고물가·저성장·고부채 경제 대응 △첨단 기술 전환 과정에서의 산업 역풍 대응 △지정학적 위기 대응 등이 주요 현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치와 경제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다. 이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대일로(一?一路)’와 남태평양으로의 팽창 시도 등으로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본격화하며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도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디지털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로 인류는 그간 겪어보지 못한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한 한국의 해답으로 ‘행동하는 연대를 위하여(Solidarity in Action)’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기후변화의 위기, 보건과 디지털 격차는 세계시민의 자유,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며 “도전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더 강력하게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분절된 세계경제 상황 속에서도 세계경제의 성장과 인류의 자유 확장에 기여해온 자유무역 체제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글로벌 공공재”라며 “장벽을 쌓고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호혜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라며 “이 역시 자유와 연대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복원될 전 세계적인 공급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겠다고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반도체·2차전지·철강·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과 제조 역량을 보유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보편적 규범을 준수하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함께 공급망의 안정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연설은 전날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밝힌 대한민국의 비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세계 공급망 재편의 중추를 담당할 한국을 믿고 투자해도 된다는 신뢰의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평화·번영을 염원하는 나라들과 함께 협력하고 함께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며 “우리는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경제·기술 생태계를 조성해 인류의 공동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디지털 기술이 전 세계에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모델부터 구축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디지털 기술을 누릴 권리를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규정하고 디지털 심화 시대의 새로운 이슈에 대한 해결 원칙을 제시하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힌 디지털 격차 해소 방안인 ‘뉴욕 구상’을 구체화한 해법이다. 헌법이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을 명시해 권리장전을 구현하듯 디지털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인 자유와 인권을 법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소위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적인 원전 기술력과 시공·운영 역량을 토대로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동·유럽 등 그린수소 생산에 강점을 가진 국가들과 한국·일본과 같이 수소 활용에 앞서가는 국가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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