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속 배우 설경구는 존재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는 인물이다. 정체를 숨긴 채 관객을 헷갈리게 만들어 추리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미스터리를 담당하는 것이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의 콤플렉스와 내면을 진하게 그리며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령'(감독 이해영)은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다. 좌천돼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으로 일하는 쥰지(설경구)는 다시 정상을 향해 갈 생각이다. 그러던 중 유령을 잡는 작전이 펼쳐지고, 쥰지도 유령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안 해봐서 끌렸어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이전의 모습이 번복되는 게 싫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제가 연기하는 거라 번복되잖아요. 그래서 시대와 착장이 바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처음 이해영 감독을 만났을 때, 이 영화를 항일 줄거리로만 하지 않고 장르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좋게 들렸습니다."
'유령'은 장르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지우고, 현대로 이야기를 가져와도 무방할 정도다. 초반부는 추리 소설 같은 느낌으로 흘러가다가, 중후반부부터는 액션 영화로 변한다. 추리극으로 마무리되는 원작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원작은 유령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호텔 밖에 나서면 모든 게 해결되죠. 그런데 '유령'은 그 이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돼요. 아마 작은 예산이 아닌지라, 감독님이 상업적인 걸 고민하셔서 변화가 생긴 거예요. 추리만 갖고 2시간 넘게 끌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신 거죠. 유령을 잡는 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설경구는 쥰지에게 연민을 갖고 접근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캐릭터든 연민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우선 연민이 있냐, 없냐를 먼저 보고, 연민이 없다면 생길 이유를 만들기까지 한다. 쥰지도 마찬가지였다. 설경구는 쥰지의 콤플렉스를 먼저 보고, 이로 인한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쥰지는 그 시대에 태어난 상황에 부딪혀서 콤플렉스가 생겨요. 그 콤플렉스를 비밀에 부치고 싶어 하고, 이를 지우기 위해 성공하려고 해요. 쥰지를 보니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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쥰지가 일본인인 만큼, 대사의 3분의 1은 일본어였다. 다행히 영화 '역도산'을 찍으면서 일본어 대사를 소화한 경험이 있기에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다. 외우고 발음을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일본어 대사 비법을 밝힌 그는 "일본인이 들었을 때 잘 들리는 정도"라고 자랑했다.
"박해수도 일본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원래 카이토 역에 일본 배우가 캐스팅됐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들어와서 갑자기 제의가 간 거였거든요. 2주 만에 외워야 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박해수는 해냈어요. 일본어 선생님과 합숙하면서 대사를 외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쥰지와 차경(이하늬)에게는 두 번의 액션신이 있다. 성을 뛰어넘고, 오직 사람 대 사람으로 맞붙는 장면이다. 설경구는 초반, 여자 배우와의 액션신이 겁났지만, 이하늬가 유쾌하게 받아준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저는 액션을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기술보다는 힘으로 하죠. 제가 통뼈라 매운 편인데, 잘못 맞아서 다치게 될까 봐 겁나더라고요. 촬영 중인데 다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이하늬가 엄청 잘 받아줬고,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액션을 할 때 상대 배우가 힘들어하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이하늬는 그런 거 없이 유쾌했습니다."
군인의 태를 내기 위해서는 선을 신경 썼다. 설경구는 "얼굴에 선이 있어야 된다는 게 감독님과 나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두루뭉술한 얼굴은 안됐다"며 "제복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도 많다. 당시 일본 군복이 각이 살아 있어서 직선의 느낌이 더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천명 아이돌'이라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설경구에게는 그만의 멋이 있다. '유령' 속 쥰지도 설경구의 멋이 묻어난 캐릭터다. 그는 멋짐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박하사탕'을 찍을 때 32살이었는데,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이미 얼굴이 나이가 든 것"이라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더 유리한 것 같다. 그때 동안이었으면 티가 났을 텐데, 덕을 본 게 아닐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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