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신병 확보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전 회장은 뇌물공여·증거인멸교사 등 일부 혐의는 인정한다. 하지만 횡령, 배임 등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변호사비 대납·불법 대북송금 등 의혹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는 송환을 거부하고 있어 수사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김경록 영장전담 판사는 20일 김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게 법원이 밝힌 발부 사유다. 이는 김 전 회장이 지난 10일 태국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체포된 지 열흘 만이다. 김 전 회장은 이틀 뒤인 12일 자진 구국 의사를 밝힌 뒤 지난 17일 입국했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19일 횡령·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외국환 거래 법 위반, 뇌물공여,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김 전 회장에 대해 청구했다. 다만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한 혐의는 제외됐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은 최장 20일 동안 김 전 회장에 대한 강제 수사가 가능해졌다. 검찰은 이 기간 김 전 회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풀어간다는 계획이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김 전 회장은 △4500억원 상당의 배임·횡령 △200억원 전환사채(CB) 허위 공시 등 자본시장법 위반 △640만 달러 대북 송금 의혹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에 대한 3억원 뇌물공여 △임직원들에게 PC 교체 등 증거인멸교사 △이 대표와 관련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뇌물공여, 증거인멸교사, 대북 송금 등 일부 혐의는 인정하고 있으나 횡령, 배임 등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계열사 사이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절차·법리상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으나 특정 목적을 위해 돈을 빼돌리지 않았다는 게 김 전 회장 측 입장이다. 또 이 전 부지사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한 건 사실이나 대가성 등은 없었고, 북한에 건넨 돈도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이라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에 대해서는 앞서 입국 당시 “전화니 뭐 한 게 없는데, 전화번호도 알지 못한다”며 친분설을 일축했다.
여기에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 쌍방울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 신병을 여전히 확보치 못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의 매제로 쌍방울그룹의 자금 형성, 설계·운영 등 그룹 자금 전반을 관리해 왔다고 전해졌다. 김씨는 태국에서 검거된 후 현지 법원에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 13일 갑자기 귀국 의사를 철회하고, 송환 거부 재판을 재개한다고 나섰다. 재판이 시작되면 길게는 1년 이상 김씨에 대한 국내 송환은 미뤄질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은 우선 수사력을 집중할 부분은 쌍방울그룹을 둘러싼 CB 발행 등 이른바 ‘수상한 자금’ ”이라며 “그만큼 검찰에 있어 금고지기로 알려진 김씨에 대한 신병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는 김씨가 김 전 회장의 자금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일종의 장부 등을 가지고 있다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며 “검찰은 최장 20일의 구속 기한 중 김 전 회장의 진술을 이끌어내면서 김씨의 송환을 앞당기는 데 주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쌍방울그룹을 겨냥한 수사가 시작된 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CB 발행과 관련한 수상한 자금거래 내역을 분석해 검찰에 통보하고부터다. 이후 의혹은 횡령·배임, 정·관계 비리, 이 대표에 대한 변호사비 대납, 불법 대북 송금 등까지 확대됐다. CB 발행 등 자금 거래 내역에서 수사가 시작된 만큼 검찰이 김 전 회장을 상대로 의혹의 출발점부터 조사 강도를 높이는 한편 자금 내역의 내막을 아는 김씨에 대한 송환 절차에도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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