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플랫폼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에 초점을 둔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최근 몇 년 간 빅테크 기업의 각종 독과점 남용행위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댔던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빅테크 규제 흐름을 주도했던 미국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플랫폼 규제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도 시행착오를 겪었던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입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미국 등 해외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 동향 및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계류 중이던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규제 입법을 모두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020년 10월 미 하원 반독점소위원회는 16개월의 조사 끝에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적 지위남용 우려를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 시장의 경쟁조사 보고서(Investigation of Competition Digital Markets)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미 하원은 21년 6월 5개 반독점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고, 상원은 대형 앱마켓 사업자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Open App Market Act) 등을 추가로 발의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당시 발의된 법안 중 기업결합 신고비용 현대화 법률(Merger Filing Fee Modernization Act)만 최종 통과됐고, 나머지는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EU DMA의 미국판이라고 불리는 법안인 'The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AICOA)와 대형 앱마켓 사업자가 자사 앱마켓 및 자사 앱마켓의 결제시스템 이용을 강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법안인 'The Open App Market Act(OAMA)', 빅테크의 잠재적 경쟁자 인수 행위를 규제하는 'Platform Competition and Opportunity Act(PCOA)'등은 이번 117대 미 의회가 회기 내에 통과시키지 않음에 따라 전부 폐기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도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추가 입법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평가가 어느덧 힘을 얻게 됐습니다.
‘플랫폼 규제’ 회의론이 부상한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법안의 규제대상이 광범위하고 불명확하며, 기존 경쟁법과 별도로 온라인플랫폼에 대해 추가 규제가 필요한 지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이 거론됩니다.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소산업의 성장 및 혁신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미칠 수 있다는 비판론도 여전합니다.
대내외 정치적 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상·하원이 틱톡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미국 정부의 관심사가 플랫폼 기업보다는 대중 무역규제로 바뀐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 컨텐츠 규제, 사이버보안 등 세부적인 규제 분야를 두고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지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정치적 합의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전토적으로 민주당은 개인정보보호에, 공화당은 컨텐츠 규제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이 많습니다.
대만과 호주의 사례도 참고할 만합니다. 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온라인플랫폼 규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는 보고서(디지털 경제 경쟁 정책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세계 주요 국가들의 빅테크 기업 규제는 경쟁법적 관점보다 무역 협상 카드, 자국 기업 보호 등 다양한 목적이 개입됐고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위해 기존의 경쟁법과 다른 기준과 수단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더 심도있는 분석이 필요하며 △상대적으로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에서는 시장규모가 큰 일부 국가들의 온라인플랫폼 규제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DMA 법 집행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제시하는 등 전반적으로 빅테크 규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이 눈에 띕니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 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도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 시장 실태조사 (Digital Platform Services Inquiry)의 일환으로 2022년 11월 플랫폼 규제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권고안에서는 DMA 형태의 별도 입법이 아닌 영국의 Code of Conduct 모델에 기초한 규제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는 백혜련 정무위원장이 주최하는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일부 플랫폼은 문어발식 성장으로 시장의 지배자가 됐고, 비대한 지위는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온플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백 위원장 역시 “온라인플랫폼이 시장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는 것은 전세계적 흐름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안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온플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시급한 입법을 강조했습니다.
야당만 온플법 제정에 호의적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온플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던 공정위도 카카오 사태 이후 플랫폼에 대한 입법 규제를 적극 검토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시장을 선점한 독과점 플랫폼이 신규 플랫폼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독점력을 연관시장으로 확장하는 등 경쟁을 저해하고 혁신을 방해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해외 사례를 참조해 현재 법제도에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플랫폼 규제 관련 논의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내려져야 할 문제입니다. 한 위원장의 말대로 국회와 정부가 해외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미국에서 이미 공론화된 것처럼 “선의로 도입된 규제가 혁신 기업의 탄생과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여야와 공정위가 향후 입법 논의과정에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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