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3월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상에서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며 냉대를 받았다. 당초 국제영화상 예비후보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지만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고, 외신들은 이를 올해의 무시(snub)로 꼽으며 “당혹스러운 결정” “범죄적”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24일(현지시간) 공개한 후보 명단을 보면 국제영화상에 '아르헨티나, 1985'(아르헨티나), '클로즈'(벨기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말 없는 소녀'(아일랜드), 'EO'(폴란드) 등 5편이 포함됐다. ‘헤어질 결심’은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최종 후보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며, 다른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로써 2020년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받은 ‘기생충’ 이후 3년만의 오스카상의 문을 두드렸던 한국영화의 도전도 끝났다.
‘헤어질 결심’이 적어도 국제영화상 후보에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에, 외신들은 뜻밖의 결정으로 평가했다.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헤어질 결심’을 ‘성스러운 거미’ ‘코르사주’ 등과 함께 국제영화상 후보에서 제외돼 놀라운 작품으로 꼽았다. AP통신은 “호평을 받은 박 감독의 로맨틱 누아르 '헤어질 결심'이 (후보에서) 배제된 것이 올해 놀라운 일 중 하나”라고 전했다. 버라이어티 역시 “특히 당혹스러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영화전문매체 인디와이어는 “박찬욱이 마침내 아카데미상에서 크게 인정 받을 준비가 된 듯 했으나, 아카데미상 투표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너무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며 냉대 받았다고 지적했다.
IT·엔터테인먼트 매체 매셔블은 “칸영화제에서 선두주자였던 ‘헤어질 결심’을 무시하기로 한 아카데미의 결심은 완전히 범죄적”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인사이더는 ‘헤어질 결심’의 후보 탈락에 대해 “올해 가장 큰 냉대 중 하나다. 일부 사람은 '아카데미의 억지'라고 했다”며 영화 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로저에버트닷컴은 “이 영화보다 2022년 최고 작품에 오른 영화는 거의 없다”며 “올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레이스의 최고 경쟁자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후보에 오르기는 뭔가 애매했다고 판명됐다”고 전했다.
한편 멀티버스(다중우주)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기발한 전개로 호평을 받았던 SF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 남녀 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주제가상, 편집상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특히 주인공인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을 연기한 양자경은 아시아인 배우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인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는 감독상 후보에 낙점됐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독일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콜린 패럴 주연의 블랙코미디 ‘이니셰린의 밴시’도 각각 작품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 외 작품상 후보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더 페이블맨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 톰 크루즈 주연 ‘탑건: 매버릭’,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 영화 ‘엘비스’,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를 소재로 한 ‘타르’ 등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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