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한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코로나19 ‘심각’ 단계가 풀리기 전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비대면 진료가 신속하게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한시 허용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위기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지면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하는 의료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형 병원 쏠림이나 의약품 오남용 등 우려했던 문제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 이후 비대면 진료를 통한 상담·처방은 총 3500만 건에 달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서는 국민의 92.6%가 비대면 진료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편의성·안전성에서 검증을 마친 만큼 더 이상 미적댈 이유가 없다.
주요국들은 비대면 진료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비대면 진료 시장 규모는 연평균 19%씩 성장해 2030년에 225억 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과 의료진을 갖춘 한국은 비대면 진료의 최적 국가로 꼽힌다. 이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갖가지 규제에 막혀 문을 닫거나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의사·약사 단체들은 관련 플랫폼 업체들을 잇따라 고발해 신산업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 의료계가 제 밥그릇 지키기에서 벗어나 환자들의 건강과 의료 서비스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국정 과제로 채택하는 등 신산업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의원급 병원과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과도한 제한을 둔다면 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국민 건강과 편익을 중심에 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의료 시스템과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해 진료 대상과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제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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