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에서 개발한 대규모 자연어 처리 모델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열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구글·메타 등 빅테크들 사이에서 AI 분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빅테크가 선진 AI 기술 개발과 AI 윤리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 사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8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구글과 메타 내부에서 챗GPT에 대항하는 제품과 서비스 출시의 일환으로 회사 내 AI 심사 시스템의 속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챗GPT는 지난해 11월 30일 출시된 뒤 두 달이 채 안 돼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1000만 명을 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AI와 독점적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기술을 선점하고 오픈AI가 챗GPT 유료 버전 출시를 예고한 만큼 서둘러 경쟁에 합류하지 않으면 기술과 이용자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작용한 것이다.
메타 직원들은 내부 메모를 통해 최신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AI 승인 절차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세계적인 AI 석학이자 메타의 수석AI과학자인 얀 르쿤도 최근 한 포럼에 참석해 "메타가 오픈AI보다 석 달 앞서 챗봇인 '블렌더봇'을 출시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블렌더봇은 콘텐츠 검열에서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 안전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는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메타는 이 같은 서비스를 개발할 때 엄격한 사회적 평가를 받지만 스타트업인 오픈AI는 상대적으로 이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 이용자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구글 역시 챗GPT 열풍으로 최근 AI 제품 및 기술 개발과 관련한 ‘코드레드’를 발령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직원들은 AI 서비스의 잠재적 위험을 평가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단계를 축약하는 일종의 ‘녹색차선(green lane)’을 제안하기도 했다. 구글은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구글 역시 챗GPT의 기반이 된 생성형 AI 기술에서 진보한 기술력을 가졌고 대규모 언어 처리 모델인 람다(LaMDA)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데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수를 대상으로만 베타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지난해 6월에도 람다 개발자로 참여한 구글 엔지니어 블레이크 르모인이 “람다는 자의식을 가졌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구글의 한 직원은 “사람들이 오픈AI 기술을 더 새롭고 신선하며 재미있다고 느낀다”며 “빅테크에 비해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에 답답함을 느낀 일부 뛰어난 엔지니어들은 이미 오픈AI나 또 다른 이미지 기반 생성형 AI ‘스테이블디퓨전’을 개발하는 스테이빌리티AI로 옮겨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동시에 구글의 경우 검색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광고 추천 기능이 경쟁력인 만큼 단기간에 대화형 AI로 이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챗GPT를 2007년 첫 공개 당시 세상을 뒤집어놓은 아이폰 출시와 비교하며 “사람들은 이미 챗GPT를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짚었다. AI 윤리 전문가들은 빅테크가 이번 열풍에 빠르게 합류하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앞다퉈 출시한다면 수천 명 단위가 아닌 수십억 명의 이용자들이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가짜 뉴스와 가짜 이미지는 물론 혐오나 편견 등을 이용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학습,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챗GPT가 교육·금융·언론계에서도 활용되면서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와튼스쿨 기말고사에서 B 이상의 성적을 받은 것은 일정 수준을 통과한 것일 뿐 완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메이 헤데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챗GPT의 현재 상태는 아주 괜찮지만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에서 기초 AI 리서치디렉터로 활동하는 조얼 피뉴는 "AI의 발전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만큼 항상 우리는 효율적인 평가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커뮤니티를 위한 최고의 안전한 AI 모델과 제품을 내놓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MS 측은 “AI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만들 때 오픈AI와 추가적인 안전 확보에 주의를 기울였다”며 “MS는 AI의 진보뿐 아니라 우리 플랫폼상에서의 책임 있고 윤리적인 쓰임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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