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주택 시장을 이해하는 데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기가 없었다. 매매 및 전세 모두 전국적인 급등세를 이어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급락세가 이어지고 빌라 시장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세사기가 판을 친다.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서 3억~4억 원의 전세금 하락은 흔한 일이 됐고 전세금 하락분을 돌려주기 힘든 임대인이 오히려 역월세를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몰아쳐 벌어지고 있다. 그 근저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던 초저금리 시기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미국발 금리 급등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금리 변동의 영향이 자산 시장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전월세 시장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취약한 모습들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난리의 초입에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아파트 시장의 역전세난이 있다.
최근 실거래가 추이를 빨리 반영하고 있는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살펴보면 지난해 아파트 전셋값은 전국이 8.8%, 서울이 무려 1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국지적으로 전세가 하락으로 인한 역전세난이 관측됐던 때는 간간이 있었지만 하락의 강도가 세지 않았고 지금처럼 전국적인 전세가 급락이 발생했던 시기도 없었다. 그리고 역전세난이 발생한 후 얼마 있지 않아 전세가의 재상승으로 역전세난이 희석되곤 하던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전국적인 역전세난의 악몽이 시작되는 듯하다. 전세가 급등의 고점이 2022년 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역전세난의 초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최근 서울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전세 계약의 20% 이상이 역전세 계약이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향후 고점에서 계약된 전세 건들의 갱신이 시작되는 올해 하반기가 되면 역전세난의 강도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향후 전세가는 오히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특별한 현상은 시장이자율의 2배 정도를 유지해왔던 전월세전환율(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이율)이 관측 이래 처음으로 시장이자율보다 낮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갭투자(전세 물건에 대한 투자)의 위험도를 감안한다면 시장의 균형은 전월세전환율이 시장이자율보다 높아지는 것을 요구한다. 전월세전환율이 상승하려면 결국 전세가는 하락하고 월세는 상승해야 한다. 금리가 인하되지 않는 한 전세가의 하락 압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팀목대출 등으로 확대된 전세대출은 전세라는 비제도권 부채를 제도권 부채로 뒷받침하는 레버리지 고리의 확대를 통해 전세가 급등을 초래했다. 역전세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전세금의 하락분을 조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주택 가격 하락이 지속된다면 깡통 전세 문제를 심화시키는 위험한 선택이다. 깡통 전세의 확산은 임차인의 연결을 통해 부채 돌려 막기 구조인 전세 시장에서 신용 경색으로 인한 심각한 연쇄 부도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부작용이 없는 처방은 매매 시장의 경착륙을 방지함으로써 전세가에 대한 하방 압력을 낮추는 것이다. 결국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의 행보를 빨리하는 것이 우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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