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시작과 함께 위축 일로를 걷던 미국 금융자산 시장이 1월에 급반등했다. 그동안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연준의 공격적 통화정책이 무색해지면서 월가는 이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31일(현지 시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가 1만 1584.55에 장을 마치면서 월간 기준으로 10.8% 상승 마감했다. 이는 2001년(12.2%)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1월 상승률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이달 들어 각각 6.2%, 2.8% 올랐다.
나스닥 상승에 힘입어 기술주에 주로 투자하는 아크이노베이션ETF는 지난달 27.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펀드가 설립된 2014년 이후 가장 큰 월간 수익률이다. 비트코인도 1월 한 달간 39.4% 치솟으며 2021년 10월 이후 최대 월간 상승세를 보였다. 1월 기준으로는 2013년 이후 10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이 다시 위험을 감수하고 나서면서 한때 투자자들이 꺼리던 암호화폐와 주식시장이 새해에 급상승했다”고 전했다.
시장을 밀어올린 원동력은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다. 오안다의 선임 시장 분석가인 에드워드 모야는 “미국 증시는 인플레이션 둔화 지속을 알리는 지표에 힘입어 랠리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이 지난해 12월 5.0%로 석 달 연속 오름세가 둔화된 것을 비롯해 연준이 주목하는 임금 지수인 고용비용지수(ECI)도 12월에 1.0%로 전월(1.2%)보다 상승 폭이 줄었든 것이 시장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도 주가를 끌어올렸다. 야데니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상황은 미국을 넘어서 봐야 한다”며 “세계경제는 지난해 가을에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는 증거가 점점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4.4%에서 5.2%로 끌어올리며 중국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부추겼다. 그동안 취약한 경제 권역으로 꼽혔던 유럽연합(EU) 역시 예상 밖으로 선전하는 분위기다. 유로존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에 달하면서 지난해 연간 기준 경제성장률은 미국(2.1%)과 중국(3.0%)을 웃도는 3.5%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 경제가 중국과 미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1974년 이후 처음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고조되는 낙관론이 연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연준은 주가 상승 등 금융시장이 완화하는 현 추세가 인플레이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채권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조달하기 쉬워져 투자 수요가 늘고, 증시가 오르면 자산 효과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지났다고 생각하면 금융시장이 완화돼 물가 상승세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끝났다는 시장의 판단은 (물가를 되레 높이는) 자기부정적인 예언”이라고 꼬집었다.
시장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수준을 넘어 연준의 긴축 강도가 조기에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 점도 연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선물 시장은 연준이 3월 최종금리를 5.0%까지 올리는 것을 끝으로 인상을 멈추고 11월이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엘렌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기대에 대해 “연준과 시장의 단절이 있는 지점은 올해 금리 인하가 없다는 대목”이라며 “연준은 매파와 비둘기를 가리지 않고 꽤 오랫동안 금리 정점을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 중단 시점도 시장의 기대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연준은 내부적으로 3개월치 물가 지표를 보고 중단을 결정할지, 혹은 6개월치를 봐야 할지 논의 중”이라며 “매파가 선호하는 6개월 데이터를 본다면 5월에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월가에서는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퀀티고의 디렉터인 멜리사 브라운은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치가 이미 시장 가격에 포함돼 있다”며 “연준이 금리를 올해 계속 유지하겠다고 한다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이 계속 연준에 맞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의 주가 상승은 연준과 시장 사이의 잠재적인 대결 구도를 만들고 있다”며 “이번 FOMC 이후 연준과 시장의 또 다른 대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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