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저는 이제부터 ‘스타 크리에이터’입니다.”
엠넷 ‘보이즈 플래닛’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 황민현이 말했다. 스타 크리에이터가 돼 우리 손으로 직접 전 세계가 원하는 차세대 글로벌 스타를 만들자고. 그런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이다. 왠지 4년 전엔 ‘국민 프로듀서’로서 열심히 소년들의 꿈을 지지했던 것이 떠오른다. 시대에 발맞춰 세련된 직업명으로 바꿔준 것만 같다.
◆ 차별점 강조하며 출범했던 ‘보이즈 플래닛’, 봤던 것 같은데?
‘보이즈 플래닛’을 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면 틀리지 않았다. 수년간 K팝씬을 뒤흔들었던 ‘프로듀스 101’(이하 ‘프듀’)의 포맷과 유사하다. 지난 2일 첫 선을 보인 ‘보이즈 플래닛’에는 무려 100명에 가까운 연습생들이 경쟁을 위해 등장했다. 거대한 세트장에 차례대로 들어선 연습생들은 고심하며 순위가 적혀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어 전광판에 뜬 소속사 이름을 보고 놀라고, 외모와 실력을 보고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공식적으로 ‘보이즈 플래닛’은 ‘프듀’ 후속작이 아닌, 걸그룹 결성을 목표로 한 ‘걸스플래닛999 : 소녀대전’(이하 ‘걸스플래닛’)의 시즌2다. 앞서 제작진은 호기롭게 전 시즌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내 손으로 직접 스타를 만든다”는 기조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시청자의 이름을 ‘플래닛 가디언’에서 ‘스타 크리에이터’로 바꾸고, 단독 MC를 없애고 매 미션마다 ‘스타 마스터’를 캐스팅한다. 그리고 지원자의 국적에 제한 두지 않았다.
첫 회에서는 전 시즌과의 차별성이 돋보이지 않았다. MC가 없어 트레이닝을 맡은 마스터들이 더 바빠진 것 외, 오히려 ‘프듀’와 더 유사해졌다. 피라미드를 행성 모양처럼 둥글게 만들고, 1위가 맨 위 꼭대기에 있었던 것을 중앙으로 옮겼을 뿐 시청자를 향해 합창하며 인사하는 것까지 같다.
◆ ‘조작’ 꼬리표 붙어도 아이돌 제작 놓지 못하는 엠넷
엠넷의 명맥을 이어준 ‘프듀’ 시리즈는 투표 조작 논란으로 불명예 퇴장했다. 이 때문에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작발표회마다 “공정성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단골 질문이 됐다. 그때마다 제작진은 외부인 참관제도 등을 언급했으나 어뷰징 투표, 특정 참가자 몰아주기 등 갖가지 논란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엠넷은 ‘투 비 월드 클래스’ ‘아이랜드’ 등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꾸준히 애정을 쏟았다. 줄줄이 시청률과 화제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유사한 포맷의 ‘걸스플래닛’이 탄생했다. ‘걸스플래닛’이 ‘프듀’ 부활 신호탄 격이라는 의견은 파다했다. 결론적으로 ‘걸스플래닛’이 지향했던 한중일 프로젝트가 시청자 정서에 맞지 않아 시청률 면에서 부진했으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걸그룹 케플러는 글로벌 픽으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 결국 ‘다음 이야기’ 문구까지 봤다…눈 못 떼게 하는 핵심은 ‘드라마’
시청자들이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결정적 이유는 드라마다. ‘프듀’에서 돋보였던 것도 연습생들의 성장 스토리 혹은 그들 간의 관계성이었다. 댄스 트레이너 배윤정에게 “가수가 하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던 김소혜는 아이오아이로 데뷔했고(‘프듀’ 시즌1), 팀의 부진에 재데뷔를 도전한 뉴이스트 멤버들은 감동 서사를 썼다.(‘프듀’ 시즌2) 한국인 연습생과 일본인 연습생들의 우정(‘프듀48’)은 최종회까지 땀에 손을 쥐게 했다.
‘보이즈 플래닛’ 첫 회도 드라마로 가득하다. 한 소속사에서 동고동락했던 성한빈(스튜디오 글라이드), 석매튜(MNH엔터테인먼트)가 이곳에서 재회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시선을 빼앗기 분명했다. 여기에 이미 8년 차 아이돌인 그룹 펜타곤 후이가 본명 이회택(큐브엔터테인먼트)으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은 하이라이트. 후이의 등장으로 충격받는 연습생들의 모습, 자신이 만든 히트곡 ‘빛나리’로 무대를 꾸미는 일본인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울컥하는 후이의 모습은 드라마의 절정과도 같았다.
엠넷이 가진 카드는 더 있다. 첫 회에서 부각하지 않았으나 참가자 중에는 후이 외에도 현역 아이돌이 다수 있다. 신선한 얼굴이 관건이었던 예전과 다르게 재데뷔를 꿈꾸는 이들이 확연하게 늘어났다. 이들이 또 다른 드라마의 소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엠넷의 자충수가 될 것인지 미지수다. 소위 악마의 편집이나 분량 몰아주기 등의 되풀이되는 논란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