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노윤서의 신비로운 얼굴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차갑고 반항기 가득한 모습,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 반짝이는 눈빛, 가족에 대한 따뜻한 마음 모두 그가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필모그래피가 학원물로 채워져 있지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극본 양희승/연출 유제원)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의 로맨스다. 노윤서가 연기한 남해이는 남행선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가게 일을 돕고 아픈 삼촌을 배려하면서 남들보다 철이 일찍 들었다. 힘들게 돈 버는 엄마에게 염치가 없다며 자기 주도 학습으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지만, 수학이 문제다. 어렵게 일타 강사 최치열의 강의를 듣고 싶다고 말하고, 남행선이 이를 받아들이며 수학에 재미를 붙인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최상위 소수 정예 올케어 반 사건으로 인해 학원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좌절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치열이 비밀리에 개인 과외를 해주면서 새로운 사건과 마주한다.
남해이의 가장 큰 매력은 성숙하고 속 깊은 면모다. 사춘기, 게다가 입시 스트레스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누구보다 배려심이 깊다. 가게 일을 도우라는 남행선의 말에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삼촌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배려심과 리더십이 빛난다. 반장으로 궂은일을 하면서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친구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 인물이다.
이런 남해이의 면모는 올케어반 탈락 사건에서 빛난다. 의대로 직행할 수 있는 올케어반은 모든 학생이 들어가고 싶은 반. 남해이는 높은 성적으로 올케어반에 합격했지만, 학원과 학부모의 결탁으로 수포로 돌아가는 아픔을 겪는다. 불같은 성격의 남행선은 분노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남해이는 "나는 원래 스스로 잘한다"며 오히려 엄마를 다독인다. 그러다가 혼자 방에 들어가 눈물을 터트리는 여린 마음을 지니기도 한다. 담담한 척, 참고 참다가 눈물을 터트리는 장면은 남해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품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 깊숙이 닿아 있다는 점이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가족,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 일상적인 장면으로 대부분 구성돼 있다. 때문에 배우들의 일상 연기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노윤서는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 그 자체다. 과장되지 않은 톤, 해맑은 학생의 얼굴, 공부할 때 반짝이는 눈빛 등은 방금 학교에서 나온 학생과 같다. 그는 과하지 않게 자신만의 톤으로 캐릭터를 구축해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는다.
일상적인 연기를 펼치기에 남해이가 갖고 있는 아픔은 더 공감된다. 남해이는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고, 이모인 남행선 손에서 길러진다. 극 초반 남행선에게 "친엄마 아니라서 그러냐"고 할 정도로 친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남해이가 이토록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친엄마다. 수능 전국 1등을 하면 매스컴에 탈 수 있는데, 이런 자신의 모습을 친엄마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노윤서는 꾹꾹 눌러 담았다가 조금씩 터지는 아픔을 표현해 남해이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풋풋한 청춘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다.이선재(이채민)는 오랜 친구 사이인 남해이를 짝사랑하고 있다. 아직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옆에 있으며 서로의 단짝이 돼 준다. 그러던 중 운동부였던 서건후(이민재)가 남해이에게 다가오고, 이선재는 질투를 느끼게 된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삼각 하이틴 로맨스는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다. 그안에서 얽히고설킨 이들의 모습은 간질간질한 설렘을 자아낸다.
'일타 스캔들' 이전에는 tvN '우리들의 블루스'가 있었다. 노윤서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모범생을 연기했는데, '일타 스캔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제주 토박이로, 더 큰 세상에 나가고 싶은 마음을 지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서울로 대학 가기 위해서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반항심이 있는데, 그 반항심의 결과로 덜컥 임신한다. 10대들의 현실적인 임신에 대해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 것이다. 노윤서는 차갑고 반항적이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미성숙한 청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에서도 학생 역할을 맡았다. 노윤서는 짝사랑하는 남학생을 위해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가 자신의 친구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너지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처럼 필모그래피 3개가 모두 학원물이지만, 전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노윤서는 원래 미술 선생님을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선화예고 미술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는 대학 재학 중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접하게 됐다. 모델 제의를 받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모델 일을 하던 중, 연기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노윤서는 연기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도전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를 배우면 모델 일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 냈다. 조금씩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연기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이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쌓이다 보니 연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날로 깊어져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술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다. 배우와 학업을 병행하며,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노윤서는 작지만 뚜렷한 결실을 이뤄낸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아직 미술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그는 쉬는 시간 틈틈히 미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꼭 뚜렷한 성과가 없더라도 제 스스로 조금씩이더라도 확실하게 발전해서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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